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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기고/시민과학]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면 경주 방폐장처럼 된다. - 경주 방폐장을 둘러싸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는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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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학’ 2009년 9/10월호 원고 2009.11.21.>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면 경주 방폐장처럼 된다.

- 경주 방폐장을 둘러싸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는 문제들 -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대표)

 

 

19년만의 숙원사업 경주 방폐장

우리나라에서 상업용 원자로가 가동을 시작한 것이 1978년의 일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 정도가 낮고, 국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던 군사독재정부 시절, 정부의 핵발전소 건설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미국과 유럽이 1979년 드리마일 핵사고나 1986년 체르노빌 핵사고를 거치면서 점차 탈핵발전을 선언했던 경험을 제대로 공유하지 못한 원인이 되었다. 사회적 경험과 공유없이 추진된 핵발전소 증설 계획은 결국 ‘무비판적’인 핵발전소 증설로 이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사회 전반에 민주화가 진척됨에 따라 그동안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많은 문제점들이 나타나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핵발전소와 핵폐기장 건설을 중심으로 한 반핵운동이 반공해운동의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특히 1988년을 전후로 이루어진 영광의 핵발전소 반대운동은 우리나라 반핵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것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이후 핵발전소 증설에 대한 ‘무비판적’인 모습은 ‘위험한 핵발전소’로 인식이 바뀌게 되었고, 1978년 전체 전력의 7.4%에 불과하던 핵발전 비중은 1987년~1989년, 47~53%로 최대치를 기록하지만, 이후 점차 낮아져 현재 35.8%(2008년 기준)선까지 떨어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1980년대까지 고리, 영광, 월성, 울진 등 4개 핵발전소 부지를 확보한 정부는 이후 늘어나는 핵폐기물을 처분하기 위해 핵폐기장 부지를 선정하는 과정을 추진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핵발전과 핵폐기물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던 지역주민들의 반발은 매우 강력했다. 1986~89년 영덕, 울진, 영일 등 동해안 지역을 조사한 것을 시작으로 모두 9차례 19년 동안 핵폐기장 건설을 둘러싼 지역사회의 갈등이 일어났고, 그 중에는 안면도, 굴업도, 부안 등 전국적인 사안으로 확대된 지역투쟁이외에도 삼척, 울진, 영광, 장흥, 진도, 고창 등 해안선을 따라 많은 지역에서 핵폐기장 문제로 홍역을 겪었다. 또한 1995년에는 정부가 아무 문제없다고 지정한 굴업도 핵폐기장 후보지에서 활성단층이 발견되어 정부 스스로가 지정을 취소한 사례까지 있을 정도로 핵폐기장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갈등과 혼란은 심각한 상태였다.

 

이러한 가운데 2005년 주민투표를 통해 중저준위 방폐장으로 경주가 선정되자, 노무현 정부와 핵산업계는 “19년만의 숙원”이 해결되었다며 홍보하기에 앞장섰고, 심지어 노무현 정부 퇴임을 앞두고 경주 방폐장 건설은 노무현 정부의 주요한 갈등해결 사안으로 꼽을 정도로 큰 자부심을 갖는 사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무현 정권 취임 초기 ‘부안 사태’와 ‘이라크 파병 문제’는 노무현 정부를 지지해 준 이들을 이탈시키는 주요한 계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핵폐기장 후보지 결정은 그러한 정권 초기의 갈등을 봉합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낸 ‘모범사례’였던 것이다.

 

잘못된 선정방식, 그리고 주민투표 이후의 경주 방폐장

하지만 경주 방폐장 선정이 결코 ‘모범사례’가 아니라는 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드러났다.

방폐장은 핵폐기물을 ‘처분’하기 위한 장소이다. 중저준위 폐기물의 경우, 평균 반감기(방사선 준위가 절반으로 떨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300~400년이기 때문에 최소한 그 정도의 시간동안 생태계와 격리되어 있어야 한다. 핵종에 따라서는 수천~수만년 혹은 그 이상의 물질도 있기 때문에 사실상 영구히 격리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건이다. 따라서 지질조사와 안전성 검사는 무엇보다 중요한 판단 기준이며, 다른 모든 조건에 선행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조사를 주민투표 이전 단 한차례, 그것도 4개월 동안 했을 따름이다. 정부가 지질조건보다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지역주민 수용성’이었다. 이를 위해 정부는 ‘3000억원 + 알파(반입수수료, 한수원 본사이전, 양성자가속기, 기타 지원책)’이라는 매우 큰 유인책을 내걸었고, 2005년 11월 주민투표를 앞두고 각 지자체장은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 방폐장 유치 주민투표를 진행했다. 정부가 찬성률이 가장 높은 지역을 방폐장으로 선정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4개 지역 중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던 경주와 군산은 ‘전라도 깽깽이’, ‘경상도 문디’ 등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지역감정을 부추겼고, 3000억원의 지자체 지원은 한없이 부풀려져 마치 ‘그 돈이 개인에게 돌아가는 것처럼’ 선전되었다. 지자체 공무원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방폐장 유치 활동을 벌였고, 그 결과 경주가 89.5%의 찬성률로 1위를 차지하면서 경주가 방폐장 부지로 확정되었다.

 

이렇게 ‘19년만의 숙원사업’이 끝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문제는 그리 쉽게 끝나지 않았다.

주민투표가 끝난 직후부터 지금까지 경주에는 방폐장 문제로 집회와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방폐장 부지선정의 약속사항이었던 한수원 본사 이전 위치를 둘러싼 갈등, 지원금 3000억원 중 1차 지원금인 1500억원의 사용처에 대한 갈등, 양성자가속기 설립 비용 중 지자체가 부담해야 할 1600억원에 지불에 대한 갈등, 추가 지원금의 액수와 지원시기를 둘러싼 갈등 등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한수원 본사 이전을 둘러싼 갈등이었다. 주민투표 당시 정부는 한수원 본사를 경주에 이전하여 지역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였고, 이는 주민투표 당시에도 큰 쟁점사항이었다. 당시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는 한수원 본사는 방폐장 바로 옆에 지어질 것으로 생각되었고, 일부 이미지 컷에서는 그런 것처럼 설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수원은 경주 시내에서 1시간쯤 떨어진 방폐장 부지에 본사를 옮기고 싶어하지 않았다. 특히 건설 중인 KTX 역 등에서는 더욱 멀리 떨어진 방폐장 부지 인근에 본사가 있을 경우 많은 불편함이 있다는 논리로 경주시내에 본사를 이전하려고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지역사회는 대규모 집회와 시위가 연일 이어졌고, 방화, 점거, 할복 등 격렬한 시위방법들이 나오면서 경주의 새로운 쟁점이 되었다. 결국 방폐장과 경주시내의 중간 위치에 본사를 짓는 것으로 결론이 나면서 일단락되었지만, 얼마 전까지 방폐장 유치운동을 하던 이들이 ‘방폐장 건설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하는 모습은 방폐장 주민투표가 사회적 갈등을 해소한 ‘모범사례’가 될 수 없는 결정적 근거일 것이다.

 

4년 만에 공개된 부지조사보고서, 그리고 안전성 논란

이러한 논란 속에서도 경주 방폐장이 안전한가에 대한 부분은 전혀 제기되지 못했다.

2005년 방폐장 후보 부지를 조사했던 결과보고서를 비롯, 이후 조사한 부지안전성 조사 보고서 일체가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정보공개요구는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그때마다 정부는 ‘심사가 진행 중’이거나 ‘영업상 비밀’에 해당하는 것으로 공개를 하지 않았다. 더구나 현재 한수원은 공기업이기는 하나, 정보공개의무 대상에서 빠져 있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한수원으로부터 직접 자료를 얻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월성 핵발전소와 방폐장이 있는 이 지역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단층지대와 접하고 있어 매번 활성단층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그동안 이 지역은 안전한 지역이라는 이야기만을 반복해 왔다.

 

이러던 중 지난 6월, 한수원은 2010년 6월로 예정되었던 경주 방폐장 완공을 2012년 12월로 2년 6개월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연기 이유는 연약지반으로 인해 추가 보강공사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로 인해 700억원 정도의 추가 비용이 지출되게 되었다. 그동안 우려로만 지질문제가 결국 공기지연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예정되었던 공사 기간이 지연될 정도로 지질이 좋지 못하다는 것이었지만, 어느 정도나 지질이 좋지 못한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속시원한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관건은 그동안 진행되었던 지질조사 보고서였다. 2005년 주민투표를 전후로 모두 4차례의 부지조사가 이루어졌지만, 그 내용은 몇 장짜리 요약본으로만 알려져 있거나 전혀 공개되지 않아 그 내용을 알 수 없었다. 이 자료는 방폐장 주민투표 이전, 그리고 주민투표 이후 정부와 한수원이 경주 방폐장 부지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아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즉 부지의 지질이 좋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투표를 강행했던 것인지, 주민투표 이후 알게 된 부지의 문제점을 은폐하려다가 실패하고 결국 공사기간이 지연되는 사태로까지 연결된 것인지를 밝히는 중요한 근거이다.

 

결국 7월 국회를 통해 공개된 부지안전성 조사 보고서는 예상대로 경주방폐장 부지가 좋은 지질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2005년 주민투표를 앞두고 4개월동안 진행된 부지조사에서 시추된 시추공 전체에서 불량 암반이 59~82% 이상 나타났고, 지하수유동모델링 분석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드러난 것이다. 방폐장 처분시설 주위의 부지는 자연암반으로 둘러 쌓여 인공구조물이 파손되거나 노후되더라도 핵폐기물을 생태계로부터 격리시키는 방벽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들 암반에 단열대(바위가 갈라진 것), 파쇄대(바위가 부서진 것) 등이 있는 불량암반이 섞여 있는 것은 암반이 자연방벽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하수 문제 역시 중요한 문제이다. 처분 시설 근처의 지하수는 혹시라도 외부로 누출될 방사능 물질을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인근의 지하수 유동량과 흐름을 분석하는 것은 방폐장 부지로 적합한지를 결정하는 주요한 사안 중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년 경주 지역주민투표가 진행되기 전, 이러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지역주민들은 ‘3000억원 + 알파’라는 경제적인 실리를 바탕으로 주민투표를 진행했을 뿐이지, 정작 중요한 방폐장 부지의 안전성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채 주민투표를 진행한 것이다.

 

주민투표 이후 진행된 부지조사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은 이어진다. 해당지역이 지하수량이 충분하고 유속이 빨라서 만약 방사능 물질이 외부로 누촐될 경우, 인근 토양이나 바다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내용은 공학적 보완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내용을 함께 담고 있다. 이는 논란이 확산되자 나온 한수원의 입장에서도 반복된다. 일부 지질 불량이나 지하수양이 많은 것은 인정하지만, 이는 충분히 보완 가능한 것이며 현행 규정에 따라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지조사보고서에 있는 지질조사결과. 지질등급이 낮은 붉은색~보라색부분이 광범위 하게 나타나 있다. 특히 처분시설인 사일로 인근에서도 등급이 낮은 암반이 다수 보인다.>

 

애초 방폐장과 같은 시설은 지질적으로 문제없는 ‘최적’의 조건을 찾아야 한다는 원칙을 생각한다면, 매우 당황스러운 논리이다. 하지만 그동안 진행된 방폐장 부지 선정과정에서 지질문제가 간과되었던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당연한 귀착이다. 만약 경주 방폐장의 지질 문제가 주민투표 이전, 최소한 조사보고서가 완성된 2006년~2007년 당시에라도 공개되었다면 계속 공사를 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점이다.

 

충분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몇몇 지질학계 인사들과 정부, 한수원 관계자들이 모여 결정한 사실에 피해를 입게될 사람들은 현재, 그리고 앞으로 경주에서 살아갈 모두일 것이다. 또한 이에 들어가는 비용을 부담하게 될 우리 국민 모두가 피해자이기도 하다.

 

완성도 안 된 방폐장에 폐기물만 먼저 넣겠다는 정부와 한수원

국정감사를 통해 이러한 문제는 수차례 지적되었지만, 정부와 한수원은 ‘공학적 보완’으로 극복하겠다는 기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역주민들의 반발을 의식해 ‘지역공동조사단’이 최근에 구성되기는 했지만, 공사는 계속 진행 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경주 방폐장을 둘러싼 새로운 쟁점이 나오고 있다.

울진 핵발전소의 핵폐기물을 옮겨오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2005년 방폐장 주민투표를 진행할 당시 정부는 2008년이면 우리나라 핵발전소의 핵폐기물 임시저장고가 모두 포화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소위 ‘2008년 포화설’이다. 2008년 포화 될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울진 핵발전소였는데, 울진은 6기나 되는 핵발전소가 가동되고 있으나 임시저장고가 2개 밖에 없는 지역이다. 고리 등 더 규모가 작은 곳도 3~4곳의 임시저장고가 있는 점을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임시저장고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울진의 핵폐기물 임시저장고가 포화되기 때문에 2008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방폐장을 지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 세웠고, 시간을 역산하여 2005년에는 주민투표를 통해 부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년 포화설은 수 없이 많았다. 굴업도 핵폐기장 논란 당시 정부는 2000년 포화설을 들고 나왔고, 이후 압축기술이 향상되면서 한때 2010년 포화설이 나오기도 했지만, 2005년 주민투표 당시는 다시 2008년 포화설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렇게 포화년도가 고무줄처럼 왔다가 갔다하는 것은 정부가 실제로는 압축기술과 임시저장고 증설 등을 통해 해법을 갖고 있지만, 방폐장 문제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논리를 앞장 세우기 위해 **년 포화설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2005년 주민투표 당시 2008년 포화설에 따라 2008년 말 완공예정이었던 경주 방폐장이 인허가과정에서 2009년말과 다시 2010년 6월로 늦춰졌지만, 정부가 이야기하던 방폐물 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동안 쌓여 있던 방사성폐기물을 다시 압축하는 공정을 충실히 진행했기 때문이다. 또한 올해 11월부터는 압축한 방사성폐기물을 다시 1/20 정도로 농축시키는 유리화설비까지 울진에서 가동을 앞두고 있어서 그동안 이야기했던 포화설을 더욱 늦출 수 있는 시간을 벌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지질문제로 방폐장 완공이 2012년 12월로 다시 늦춰지자, 정부는 울진핵발전소의 핵폐기물이 포화되어간다는 이유로 방사성폐기물 1,000드럼을 먼저 옮기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 1,000드럼의 폐기물은 원래 방폐장이 완공되면 시험가동 등을 위해 운반하여 폐기하기로 했던 분량인데, 아직 방폐장이 완공되지는 않았지만, 옮겨와 경주의 임시저장시설에 완공될 때까지 보관하겠다는 것이다. 지질문제로 인한 쟁점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직 완공되지도 않은 방폐장에 먼저 폐기물부터 넣고 보겠다는 발상이다.

 

<경주에서 열린 방폐장 우선사용 설명회에서 지역주민들이 플랭카드를 철거하며 설명회 개최를 가로 막고 있다.>

 

이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감정이 좋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난 11월 11일 있었던 ‘방폐장 우선사용 설명회’는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또 다시 경주는 방폐장으로 인한 논란에 휩싸여 있다. 정부와 한수원은 ‘어짜피 옮길 폐기물’을 적절한 법적 절차에 따라 옮기는 것은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즉 그동안 있었던 지질 안전성 논란이나 지역주민들과 공동으로 마련한 ‘지역공동조사단’의 결과와 상관없이 2012년 12월로 수정된 방폐장 완공 계획에 맞춰 모든 계획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새롭게 공동조사를 한들, 새로운 내용이나 결과를 예상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아직도 머나먼 길, 경주방폐장. 그리고 고준위핵폐기물 문제.

2005년 주민투표가 끝난지 벌써 4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경주의 상황은 진행형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방폐장 안전성 문제, 방폐장 우선 사용문제 등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글에서 다루지는 않았지만, 아직 착공조차 하지 못한 양성자가속기사업, 약속만 있고 집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8조 4천억원에 이르는 추가적인 지역 지원사업문제, 선거 때마다 다시 원점에서 이야기할 것을 약속하는 한수원 본사 이전문제 등 방폐장 건설을 하면 모두 들어주겠다고 했으나, 어느 것하나 약속대로 된 것이 없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다면, 어느 누구도 경주 방폐장을 성공한 갈등 해결사례 - 즉 ‘모범사례’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환경단체와 지역반대운동단체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말을 믿고 89.5%의 찬성률을 보여준 이들을 탓하거나 원망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미 그런 일들이 일어날 것을 예상했으나 지역주민들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조직력과 신뢰를 보여주지 못한 환경단체와 지역반대운동단체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는 더 큰 사회적 갈등요인 - 고준위핵폐기물 문제가 남아있다.

방사성 준위가 중저준위에 비해 월등히 높아 최소 1만년을 격리시켜야 하며, 아직 충분한 처분기술이 개발되어 있지 않으며, 전세계적으로 처분의 사례가 없는 고준위핵폐기물 말이다. 또한 이 물질은 재처리과정을 거치면 플루토늄 등이 나올 수 있어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고 있는 물질이기도 하다. 2005년 주민투표 이후 고준위핵폐기물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지에 대한 많은 논의가 정부, NGO 간에 있었으나,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시간만 흐르고 있다. 올해 하반기부터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려던 ‘공론화 계획’ 역시 알 수 없는 이유로 1년간 유예되어 ‘실제로 공론화 추진이 가능한가?’라는 근원적인 질문까지 나오고 있는 사안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중저준위방폐장이 ‘3000억원 + 알파’면 고준위임시저장시설은 최소한 그것보다 보상금이 많지 않겠냐며, 유치운동의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들의 눈에 2005년 이후 경주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일들이 어떻게 평가될 일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처럼 진행된다면 경주보다 더한 혼란과 갈등이 유발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2010년을 전후로 한 시점에 대한민국인 ‘경제적 보상’으로 중요한 정책과정을 결정한 우를 범해 그 피해를 후세사람들이 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3000억원은 구경도 하지 못하고 선조들이 남겨 놓은 폐기물과 함께 살아가야 할 바로 우리의 후손들이다. 매번 발표하는 성명서 말미에 ‘아직도 늦지 않았다’는 말을 넣곤하지만, 잘못된 것들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시점은 이제 많이 남은 것 같지 않다. 문제를 바로잡고 후세들에게 떳떳할 수 있는 그런 해결책들이 나오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후세들에게 우리처럼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이렇게 된다’는 명예스럽지 못한 교훈만을 남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