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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한겨레21] 대자본이 생태 파괴하며 만든 수력·조력발전이 대안이 되겠는가…소규모 분산형’ 미래 에너지 체제 고민해야

영국 셀라필드 핵발전 단지, 프랑스 랑스 조력발전소 지역, 덴마크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를 다녀와서 쓴

한겨레 21 기고입니다.

하나의 글처럼 되어 있지만, 아래 핵관련 글을 BOX 기사로 별도로 나간 기사입니다.

 

사진을 포함한 전체 기사는

http://h21.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26429.html 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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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녹색주의’ 없는 기후대책은 재앙 [2010.01.01 제792호] 
 
[기고] 대자본이 생태 파괴하며 만든 수력·조력발전이 대안이 되겠는가…
‘소규모 분산형’ 미래 에너지 체제 고민해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15차 당사국회의(COP15)가 끝났다. 결국 고대했던 ‘답’을 내진 못했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다. 결론이 늦어진 만큼 내년 회의에서 더 정교하고 엄정한 대안이 마련되고 합의돼야 한다는 부담이 생겼다. 지구온난화를 포함한 기후변화는 우리의 ‘상식’과 ‘과학’을 앞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 프랑스 서부에 위치한 랑스 조력발전소 전경. 전체 길이가 750m에 이르는 대규모 발전소는 해수 흐름을 바꾸면서 또 다른 환경파괴 논란에 휩싸였다.

환경파괴 일삼으며 “녹색에너지” 분칠


이산화탄소만 줄인다고 지구가 눈물을 멈출 것인가? 이번 코펜하겐 회의 내내 세계 시민(단체)들이 주도한 별도의 클리마포럼 무대에서 접한 아이슬란드 사례는 이런 의문을 명확히 대변해줬다. 코펜하겐 회의를 찾은 이 나라 환경단체 ‘아이슬란드 구하기’(Saving Iceland)의 활동가 망누스 스테판손은 자국에서 알루미늄 제련을 하고 있는 다국적기업을 비판했다. ‘녹색에너지’를 사용한다고 포장했지만 날조란 얘기다. 그러면서 ‘친환경 에너지’가 도대체 무엇인지 반문한다.


인구 32만 명 규모의 아이슬란드는 작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4만달러에 이르는 부자 나라다. 화산이 많아 지열발전과 대규모 수력발전이 쉬운 자연조건을 갖고 있다. 덕분에 전력이 풍부하고 값싸다. 최근 다국적 알루미늄 제련회사들이 그곳에 하나둘 공장을 짓고 있다. 알루미늄은 보크사이트 원석을 전기분해해서 만들므로 많은 전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녹색에너지로 생산한 알루미늄”이라고 열을 올리며 기업 이미지 제고에 힘쓴다. 대부분의 보크사이트 원석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같이 먼 곳에서 가져오기 때문에 많은 화석연료가 들어가는데도, 전력 생산에서 이산화탄소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만 강조하는 것이다.

빙하·화산 지대가 만나 큰 협곡과 물줄기를 이루는 천혜의 자연환경이 수력발전을 위해 건설된 댐으로 인해 곳곳에서 파괴되는 사실에도 애써 눈감는다. 대표적 수력발전소인 카란유카르댐으로 인해 폭포 60곳과 순록 서식지를 포함해 생태 가치가 높은 지역이 물에 잠겼다. 한마디로 온실가스를 잡겠다며 더 많은 ‘환경파괴’를 놓치고 있는 셈이다.

 

 

 

잘못된 상식 ‘조력발전=친환경’


아이슬란드 역시 국가 차원에서 지역 발전을 근거로 개발을 장려하고 있으나, 인구 500명의 작은 마을에서 제련소 노동자는 3명에 불과할 정도고 모든 이윤은 초국적 기업에만 돌아간다며 스테판손은 분통을 터트렸다. 생산된 전력도 대부분 알코아라는 다국적 알루미늄 기업에 돌아간다는 것이다.


코펜하겐에 가기 앞서 2009년 12월2~5일 프랑스에 들렀다. 서부 지역에 위치한 랑스 조력발전소가 목적지였다. 이 나라 최대의 조력발전소다. 한국 정부와 발전 사업자들은 이 발전소를 모범으로 꼽으며 관광 효과와 지역경제 발전을 들어 조력발전소의 필요성을 홍보해왔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조력발전이 친환경적 대체에너지라는 ‘상식’이 두텁다.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랑스 조력발전소는 프랑스의 유명한 휴양지 생말로와 디나르 사이를 흐르는 랑스강 하구에 1966년에 건설됐다. 두 지역은 중세 유럽의 성과 아름다운 해안을 갖고 있어, 여름이면 요트 축제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하지만 12월은 달랐다. 말 그대로 ‘철 지난 휴가지’였다. 우리 말고 방문객은 없었다. 관광객이 조력발전소를 구경하려고 꼭 한번씩 들른다는 홍보관은 자물쇠로 굳게 잠겼고, 비가 퍼붓는 방조제 위엔 자동차 안전표지판을 점검하는 발전소 노동자들만이 오갈 뿐이었다.

생말로와 다나르 관광안내소엔, 한국 정부 등의 설명과는 달리, 조력발전소 연계 관광 프로그램이 전혀 없었다. 그 나라 발전 사업자인 프랑스전력공사(EDF)가 주관하는 여름휴가철 프로그램이 전부였다. 프랑스보다 더 호화로운 우리 정부의 홍보에 꾀인 셈이다. 발전소 옆에 있는 아름다운 중세시대 성과 넓은 백사장은 제쳐두고, 길이 750m짜리 콘크리트 더미를 찾은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 코펜하겐 기후회의가 열리는 동안 전세계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에너지 산업계 박람회인 ‘브라이트 그린 엑스포’ 행사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다국적기업이 기후 위기를 장사 수단으로 삼으며 이미지까지 분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룻밤 묵은 민박집 주인 부티에의 말도 귀에 박혔다. 그는 “내가 어릴 때 발전소가 지어져 정확하지는 않지만, 반대운동이 크게 있었던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교통량 증가로 발전소 옆에 새로운 다리를 놓는 계획을 시에서 추진하고 있는데 이를 프랑스 녹색당 등이 반대한다는 소식을 전하며 “아마 지금 조력발전소를 지으려고 했으면 환경문제로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력발전소가 들어선 뒤 해수 흐름이 달라지는 점 등을 ‘학습’한 결과다. 요트 축제 땐 큰 배가 지날 때마다 발전소의 방조제 통행을 통제하는데, 이로 인해 교통체증이 극심하단다. 750m 구간을 지나는 데 30분이 걸린다고 한다. 불편함을 떠나, 과연 친환경적인지 알 수 없다.

국내에도 조력발전에 대한 찬반이 없는 건 아니다. 충남 가로림만, 경기 강화도, 인천만 등에 지어질 예정인 조력발전소가 대표적이다.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원으로 ‘저탄소 녹색성장’의 대표적 예로 꼽히는 한편, 갯벌을 막아 방조제를 건설하고 해수 흐름도 차단하기에 환경을 파괴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여전히 연륙교 역할을 하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 등이 정부나 시민 사이에선 더 큰 지지를 받는 게 사실이다.


코펜하겐 회의장, 기업들 세일즈도 치열


덴마크·미국 등 주요 선진국이 비밀리에 작업하던 ‘덴마크 문서’가 폭로되면서 코펜하겐 회의가 혼전으로 치닫던 2009년 12월11일, 환경단체 ‘기후정의행동’(Climate Justice Action)을 중심으로 모인 일단의 활동가들은 코펜하겐 시내에서 ‘거짓말 불매 집회’(Don‘t buy the lie!)를 게릴라식으로 열었다. 활동가 1천여 명이 “우리의 기후로 장사하지 말라!”(Our climate, not your business!)를 외치며 시내 곳곳에 있는 기업과 그들의 행사장 앞 도로를 점거하고 깜짝 집회를 연 것이다. 산업계의 박람회장인 ‘브라이트 그린 엑스포’(Bright Green Expo)와 셸(Shell)·렙솔(Repsol) 등 거대 에너지기업, 국제배출권거래협회, 덴마크에너지협회 등이 항의 대상이었다.

코펜하겐 회의를 맞아 시내 곳곳에는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초국적기업들의 광고가 가득했는데, 실상 이 집회는 해당 기업과 단체에 국한하지 않고 기후변화를 둘러싼 산업계의 ‘녹색분칠’(Greenwash) 전체를 총체적으로 비판하는 것이었다.

해마다 기후변화협약 회의가 열리는 곳은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 치열한 논쟁의 전장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동안 환경파괴 기업이라는 오명을 가진 업체엔 이미지 개선의 장이기도 하고, 에너지 관련 기업에는 새로운 무한경쟁을 위한 마당이기도 하다. 실제 코펜하겐 회의장 일대에선 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170개 기업이 참가한 브라이트 그린 엑스포 이외에도 전기자동차 전시 및 시승 행사, 해상풍력단지 견학 보트투어 등 기업 행사가 열렸다. 한마디로 기후변화협약 회의는 환경문제를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보는 ‘짙은 녹색주의’(Dark Green)를 상대로, 기술과 디자인 혁신만을 중요시하는 ‘밝은 녹색주의’(Bright Green)가 위력을 행사하는 곳이기도 하다.

코펜하겐 회의 뒤 스웨덴 환경장관은 이번 회의를 두고 “재앙이자 엄청난 실패”라고 말했다. 모든 결정을 내년으로 미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방법을 결정한다고 할지라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이는 중요한 요건이지만, 환경문제를 결정짓는 여러 판단 기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저탄소의 수력발전소로 강이 사라지고 조력발전소가 갯벌을 파괴한다면, 그리고 이 과정에서 거대자본만이 이익을 거둔다면, 이는 결코 친환경적이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내년으로 미뤄진 숙제 제대로 풀려면


그래서 미래 대체에너지는 소규모·분산형 체제여야 한다는 새로운 ‘상식’이 제기된다. 이에 충실한 나라로는, 지붕 위나 고속도로변과 같이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곳에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하고 지역 단위로 실정에 맞는 바이오에너지를 개발해온 독일을 꼽을 수 있다.

코펜하겐 회의만큼이나 우리 사회가 논의해야 할 환경문제는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해결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가장 기본적인 숙제마저 또 미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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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시설 상징’ 도시의 마을회의 현장

국가와 마을, 결론 없는 무한논쟁


  
 
≫ ‘핵시설의 상징’인 영국 셀라필드 지역 세인트비스에서 고준위 방사선 핵폐기물을 주제로 한 마을회의가 열렸다. 핵시설이 들어선 지난 60여 년 동안 지역 경제나 생활에 실질적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한 공방이 거칠게 이어졌다.
 
 
 
‘원자력 르네상스’. 대체에너지로서 원자력의 가치를 수식했던 말이다. 하지만 선진국을 보면, 이야말로 ‘상식 아닌 상식’이 돼가는 분위기다.


영국 북부의 셀라필드. 핵발전 시설의 상징이다. 1947년 들어선 무기급 플루토늄 생산시설과 세계 최초의 상업용 핵발전소를 비롯해 우라늄 농축 및 핵연료공장, 재처리시설, 핵폐기물 임시보관시설까지 핵발전을 둘러싼 모든 시설이 모여 있다. 핵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게다가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책으로 핵발전소 신규 건설을 추진하는 영국 정부가 2009년 11월 초 발표한 새 핵발전소 후보지 가운데 하나로도 꼽혀 ‘주목도’가 더 커졌다.


코펜하겐 회의 참석에 앞서 지난 12월1일 그곳을 들렀다. 때마침 카운티 의회 주최로 마을회의가 열렸다. 주제가 고준위 핵폐기물에 관한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에 가로등도 없는 시골길을 더듬더듬 운전해갔다.

영국은 2003년부터 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CORWM)를 통해 사용후 핵연료 처분에 대한 공론화를 도모하고 있다. 마을회의에서도 위원회가 설명에 나섰다. 하지만 설명이 끝나자마자, 논쟁은 신규 핵발전소 건설 문제로 건너뛰었다. 기존 핵발전 단지 건설로 실질적인 일자리가 늘어났는지를 두고 공방했다. 한 노인은 “199년대에도 핵 관련 시설을 건설하기로 한 차례 추진했다 좌초됐는데, 왜 또 수십 년 된 논쟁을 하려고 하느냐”고 질타했다.

이 풍경의 진짜 함의는 60년에 이르는 핵시설의 역사를 가진 지역에서조차 여전히 ‘핵’은 논쟁적이란 것이다. “국가 정책이니 큰 그림을 생각해야 한다”는 위원들의 발언이 이어졌지만, 마을회의의 결론은 도출되기 어려워 보였다.

핵의 입지는 이번 코펜하겐 회의에서도 뚜렷하게 줄어드는 모습이었다. 일단 ‘핵 르네상스’를 옹호하는 행사는 유럽의 젊은 공학자들이 주최한 행사 정도에 불과했다. 코펜하겐 회의장 내에 마련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홍보관에서 실무자에게 물어보니 “여러 가지 문제로 준비되지 못했다”는 설명만 들었을 뿐이다. 반면 핵 반대 행사는 5~6건이 집중적으로 벌어졌다. 2008년 폴란드 포츠난 회의에서 4~5개에 이르는 IAEA의 행사에 모두 참가했다가 그곳 관계자로부터 “어디서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을 받고 멋쩍게 “한국의 반핵 활동가”라고 대답한 기억이 있는 필자로선 극명히 달라진 분위기가 되레 당혹스러웠다.

올해 코펜하겐 회의의 숨은 주제에는, 핵발전을 온실가스 저감 방안인 청정개발 체제로 인정할 것인가도 포함돼 있었다. 반핵 활동가들이 다양한 행사를 벌인 까닭이다. 코펜하겐 회의의 결론이 늦춰짐에 따라 핵발전의 청정개발 체제 포함 여부에 대한 결정도 늦춰졌다.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여러 국가들이 반대하고 있으나, 일본 등 찬성하는 국가도 존재한다.

한국은 적극적이다 못해 전투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연말 “원자력 산업은 탄소 배출을 줄이는 대안이자 원가 대비 가장 경제성이 있는 친환경 산업”이라며 “2015년까지 설정한 원전기술 자립화 목표를 더 앞당기겠다”고 발표했다. 그 뒤 한전기술 등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뛰어올랐다.

 
코펜하겐(덴마크)·랑스(프랑스)·셀라필드(영국)=글·사진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greenred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