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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_보도자료_알림

[성명서] 유치 환호가 아니라, ‘핵 없는 세계 만들기’에 한국이 기여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 2012년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 개최에 따른 에너지정의행동 성명서 -


유치 환호가 아니라, ‘핵 없는 세계 만들기’에

한국이 기여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 2012년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 개최에 따른 에너지정의행동 성명서 -

 

 

핵안보정상회의 유치? 이건 월드컵과는 차원이 다른 행사이다.

어제(1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1차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차기 회의 장소로 대한민국을 만장일치로 발표했다. 작년 오바마 대통령이 체코 프라하에서 ‘핵 없는 세계’를 주창한 이후, 올해 5월부터 열리는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의를 앞두고 열린 이번 회의는 최근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I)의 후속협정이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조인됨에 따라 더욱 기대감을 모은 회의였다.

 

이번 회의는 세계 47개국 정상이 모여 핵안보 문제를 논의했다는 점에서 기존보다 한 걸음 나아간 것이 분명하지만, 회의의 주요 의제가 핵무기를 이용한 대테러 국제협력 네트워크와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HEU)에 대한 통제로만 국한되어 ‘핵 없는 세계 만들기’를 향한 큰 성과를 내었다고 말하기는 힘든 회의가 되었다. 비핵보유국에 핵무기 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안전보장((Negative Security Assurance)’이나 ‘핵무기 선제불사용(No First Use)' 등 그동안 핵군축을 위한 국제사회의 주요 의제들이 이번 회의에서는 의제로 채택되지도 않았다. 최근 미국이 핵태세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 Report)를 통해 이란과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에 대해 소극적 안전보장을 선언한 것을 생각할 때, 주최국 미국이 보수파들의 반발을 의식해 적극적인 ’핵없는 세상 만들기‘에 나서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 개최를 마치 월드컵이나 올림픽 개최처럼 ‘국익 과시’하고, ‘경제적 부를 창출’하는 행사로 이해하는 것은 오히려 국제사회의 조롱을 받을 일이다. 핵군축문제는 기후변화문제 해결과 함께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현존하는 위험’이며, 이를 막기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은 매우 오랜기간에 걸쳐 진행되어 왔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어지는 국제회의 유치를 기회로 ‘한 몫 잡아보겠다’는 식의 접근은 오히려 국격을 떨어뜨리는 ‘얄팍한 상술’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추진, 원전 세일즈, 조건부 북한 초청이 의미하는 바.

한편, 우리는 이번 제1차 핵안보정상회의를 전후로 한국정부가 보인 태도에 대해서도 많은 우려를 표한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핵주권론’에 편승해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비롯 핵분열물질의 확산을 조장하는 일들을 추진해 왔다. 이미 한국정부는 이번 핵안보정상회의와 NPT 회의 개최로 늦춰진 한미원자력협상을 통해 파이로프로세스 방식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수차례 밝혀왔고, 이에 편승해 보수진영에서는 이 참에 플루토늄 추출 등이 가능한 본격적인 핵재처리까지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수차례 밝혀왔다.

 

여기에 이번 핵안보정상회의 기간동안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핵발전소 수출이 결정된 UAE를 비롯, 핵발전소가 없는 국가들을 대상으로 소위 ‘원전 세일즈’를 펼쳤다. 핵발전소가 없는 국가로의 핵발전소 확산이 핵확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국제사회의 우려는 그동안 줄기차게 있었다. 핵기술과 사용후핵연료의 확산이 종국에는 핵무기 기술의 전파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이다. 기후변화의 해결책으로 핵기술이 언급될 때에도 이 문제는 심각한 문제였고, 북한, 이란 등 핵무기 개발에 나서는 국가들도 애초 전력공급을 이유로 들면서 핵개발에 참여했다는 사실들을 안다면, ‘핵없는 세상 만들기’를 위해 모인 회의장에서 ‘원전 세일즈’를 하고 있는 우리 대통령의 모습은 매우 낯뜨거운 우리의 자화상이다.

 

여기에 이번 회의에는 초청조차 되지 않은 북한의 2차 회의 초청여부를 묻는 질문에 ‘6자회담 복구 후 핵무기 철폐의지’를 보이고, ‘NPT 재가입’을 해야 한다는 수많은 단서조항을 붙이는 등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를 북한을 압박하는 카드로 사용하고자 하는 모습은 우리나라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일’에만 관심이 있을 뿐 정작 ‘핵없는 세계 만들기’라는 핵심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핵없는 세계 만들기’에 한국의 역할 수행을 촉구한다.

‘핵없는 세계’는 완성된 명제가 아니라, ‘만들어가야 할 대상’이다.

이번 미국과 러시아의 신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의 결정이 이행된다 할지라도 지구상에는 1500여개 이상의 핵무기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가운데, 북한, 이란, 이스라엘 등 신흥 핵무기 소유국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도 핵으로부터 위협받고 있는 인류의 미래가 그리 밝지만은 않다는 증거이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는 그동안 ‘핵 없는 세계’에 대해 깊은 고민과 이성적 대응을 해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북한 핵실험에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핵주권론’처럼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는 주장으로는 ‘핵없는 세계’는 커녕, 인류의 미래를 단축시키는 결과를 낳게될 것이다.

마침 2012년은 한반도 정세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해이다.

남한의 대통령 선거, 한미연합사령부 해체, 북한의 강성대국 선언 원년, 미국, 중국, 러시아의 주요 선거가 집결되어 있는 때가 2012년이다. 이들 모두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국제정세에서 갖는 의미가 매우 크다. 이러한 때 열리는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가 ‘핵 없는 세계 만들기’의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그동안 ‘핵 없는 세계 만들기’에 오히려 역행해 온 한국 정부의 태도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계기를 통해 그동안 추진해왔던 핵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그 의미들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는다면, 2012년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우리나라는 오히려 망신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핵안보정상회의 유치를 통해 우리 정부가 ‘핵 없는 세상 만들기’에 더욱 앞장서기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

 

 

2010.4.14.

 

 

에너지정의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