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고리 핵발전소 ‘방사능에 무능한 방재훈련’ 참가기
작성 2008. 5. 16
어제 부산의 기장에서 지진을 가정한 방사능방재 훈련이 있었다. 작년과 올해 일본과 중국을 강타한 지진 소식에 핵발전소가 8기나 들어서있는 기장의 상황이 영 불안하던 차에, 지자체와 한국수력원자력이 함께 대규모 방사능 방재 훈련을 한다니, 시민으로서 그 자리에 참석도 하고 사고에 대비한 훈련도 하고자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기장에 갔었다.
핵발전소가 바로 앞에 내다보이는 월내마을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 18분. 사고 발생 가정 시각은 오전 9시. 이미 마을 사람들이 훈련에 참여중이라 집 밖을 나오지 않아 거리가 이렇게 한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을은 텅 비어 있었다.
나와 친구는 고리에 낚시를 하러 온 관광객임을 가정하고 방파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언론에 발표된 매뉴얼에 따르면, 11시경부터 마을 주민의 대피 명령이 이루어져 특정한 장소에 집합, 이동이 시작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10분이 흘러도 20분이 흘러도 훈련과 집합, 이동에 관한 방송이 나오지 않았다.
방파제로 들어오면서 11경에 마을 사람들이 옆 마을 초등학교로 모인다는 마을 어른의 이야기를 들은 터라, 적어도 비상 사이렌 소리라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 우리는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지만 서둘러 인근 초등학교로 발을 돌렸다.
오전 11시 2분.
고리핵발전소 정문과 직선거리로 100M도 안 되는 자리에 위치한 월내 초등학교에 도착하였다. 마을이 무척 한산했던 터라 마을 주민이 여기에 다 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는데, 웬걸- 마을 운동장에는 100명도 되지 않은 주민들만이 하얀 방재복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마을 주민들 틈에 끼어 이번 훈련에 참여를 하고 싶으니 우리에게도 방재복을 달라고 관계자 인듯한 사람에게 말 하였다. 그러나 주민 인원수에 맞추어 방재복이 나온 것이라 여유가 한 벌도 없다고 하였다. 하는 수 없이 우린 방재복 없이 이번 훈련에 참여하기로 했다.
오전 11시 9분.
초등학교가 위치해있는 길천마을에서 마을 방송이 나왔다. 조금 후 40분부터 훈련이 시작되어 업무대피 및 차량통제 등이 실시될 터이니 놀라지 말라는 방송이었다.
오전 11시 20분.
노란색 분홍색 옷을 입은 초등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훈련의 제목에 「주민과 학생이 함께하는」이라는 소재목이 같이 붙어 있던데, 학생들도 이번 훈련을 통해 사고에 대비한 훈련을 할 수 있겠거니 생각하였다. 그러나 훈련에 참여한 학생들은 학교의 5학년과 6학년뿐이었다. 한 학생에게 이런 훈련을 언제 도 한번 해 보았냐고 물었는데 기억이 없다고 하였다.
그래도 핵발전소 바로 앞 100M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사고에 대비한 훈련이 학생들에게는 너무 이례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어른들과는 달리 노란색 분홍색 비옷을 입은 학생들은 비라도 엄청 내렸으면 좋겠다며 자기들 끼리 떠들며 장난을 하였다.
오전 11시 30분
우왕좌왕하던 마을 사람들이 버스에 탑승하라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6대의 버스에 나눠 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문제가 발생했다. 학생들이 타는 버스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탈 버스, 비교적 젊은 사람들이 타는 버스가 정해져 있는데, 통솔이 제대로 되지 않아 버스를 탔다 내렸다 이것만은 제대로 사고 상황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차량 통제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아, 버스를 탑승 하는 중에도 일반차량이 지나다녀 사람과 차량이 엉키고 난리 법석이었다.
아이들은 스승의 날이라 그런지 예쁜 치마와 구두를 신은 선생님을 따라 앞 쪽의 차와 뒤쪽의 차에 나누어 탔다.
오전 11시 37분.
100여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6대의 차량에 나눠 타고 출발하는데 까지 7분이 넘게 걸렸다.
오전 11시 51분.
훈련이 이루어지는 원자력교육원 정문에 도착하였다. 버스 문이 열리고 예닐곱 명의 사람들이 버스에 더 탔는데, 뭔가를 받았느니 안 받았느니를 큰 목소리로 이야기 하였다. 뭔가 불안한 마을 주민 중에 한명이 뭘 받아야 하냐고, 우린 받지 않았다고 말 하였으나 지휘자인 듯한 사람은 말대꾸도 하지 않았다.
버스는 계속 움직이지 않았다.
막간을 이용하여 이번에 어떤 훈련이 이루어지냐고 마을 분들 몇 분께 물었다. 그분들은 마을에서 태어나 지금도 마을에서 직책들을 하나씩 맞아 일을 하시는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란 대답과 ‘태어나서 처음’이라는 대답을 해 주었다. 이장님은 마을 사람들이 사고가 발생했을 시 ‘초기집합장소’도 잘 모르고 있다며 걱정하셨다.
오전 11시 56분.
어떤 훈련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계속 기다림. 차는 움직이지 않음.
오전 11시 57분.
앞쪽에서 곧 세차를 하니 창문을 닫으라는 지시를 하였다.
이장님과 군에서 나눠준 이번 훈련과련 유인물을 함께 보았다. 사고가 발생했을 시 착용할 마스크와 응급처치 약에 대한 소개 가 있었다. 그러나 이장님은 마스크가 사람 수 만큼 배정 된 것이 아니라 가호 당 하나씩 배정이 되어 있어서, 만약에 사고가 날 경우 집안 식구 끼리 싸워야 된다며 웃으셨다. 또 유인물에 분명히 적힌 사고 직후 복용해야 할 ‘알약’ 과 관련하여, 유인물에는 각 이장집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시만 정작 자신은 가지고 있지 않아다며 유인물의 잘못을 지적하였다. 또한 ‘보건셋트’와 관련하여서는 전국 어느 마을에나 있을 것을 특별한 것인 양 홍보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하셨다.
오전 12시 1분.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 쪽에 ‘제염장치대’라 적힌 설치물이 보였다. 아까 말한 차량 세차를 하는 것이다. 앞에서 내릴 준비를 하라는 말이 들렸다. 나는 마을주민 한명이 참여하지 않아 남게 된 방재복을 입고 나길 준비를 하였다.
오전 12시 4분.
버스에서 내리라는 방송이 들렀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오른쪽에 무대를 차려놓고 천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사회자가 두 명이었는지 한명이었는지도 기억하지 않는데, 아주 세련된 말투를 가진 목소리가 우리가 곧 방사능 노출 정도를 검사하는 검사대를 지날 것이라 말 하였다.
앞쪽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언론사 취재 카메라와 옆쪽에는 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의 시선. 완전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제야 아까 버스에서 뭔가를 나눠받은 사람들이 뭐 하는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검색대에서 방사능 노출된 사람들을 검색할 될 수 있도록 특별한 장치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우리를 구경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두 줄로 나뉘어져 짧은 검색대를 통과 하였다. 특별한 장치를 가진 사람들도 함께 검색대를 통과 하였는데, 검색대를 지나고 난 다음에 그 사람과 우리는 따로 분류가 되지 않고, 그냥 그 대로 줄을 서서 수 천 명의 관중의 옆을 지나갔다.
줄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몰랐다. 그냥 앞쪽을 따라서 계속 갔다. 우리 옆의 군중은 없어지고 앞쪽으로 밥 차와 수십 개의 파라솔, 수백 개의 의자들이 보였다.
“뭐- 꼬? 밥 묵는기갑다.”
내 뒤의 할아버지가 말했다. 뒤로는 허남식 부산시장의 인사말이 들렸다.
“......”
“뭐 했다고 밥 묵어요?”
뒤따라오는 남자 아이도 말했다.
결국 두 줄은 밥 먹는 두 줄로 변하였고, 나는 밥줄에 서게 되었다.
너무 어이가 없고 황당했다. 적십자에서 나온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밥을 퍼 주고 있고 우린 식판을 들고 밥을 먹어야 했다. 아니, 사실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났을 경우 우리는 이와 같은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이 오늘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겠지.
아무도 자신을 지킬 방법을 모르며, 방사능을 잘 막아낼지 의문스러운 방재복과 방독면(하물며 부족하기 까지 한!), 감상선 암을 예방해 줄 알약은 읍에 하나 있는 보건소에 가야지만 받을 수 있고, 대피를 위해 버스를 탄다고 하더라도 어디로 가는지, 어떠한 조취가 취해지는지도 모르고 따라가겠지.
도저히 밥을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방재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덥기도 무진장 더웠다. 방재복을 입지 않으면 훈련에 참가 할 수 없다는 마을 주민들의 말이 생각났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을 지나가는 쑈를 해야 했으니, 무대복은 필수였겠지.
마을 주민들은 “쑈에 동원되었다.”는 씁쓸한 이야기를 하며 적십자 아주머니 아저씨가 나눠준 밥을 하얀 방재복을 입고 먹었다.
나는 마을 주민들이 점심 식사를 하는 동안에 행사장 주변으로 가 보았다. 방사능 방재에 필요한 여러 군사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옆쪽에는 아주 멋진 자연현상 사진이 전시 되어 있었고, 오후 훈련을 기다리는 듯 텅 빈 의료천막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다시 버스로 돌아갔다.
버스 앞에서 방재복을 벗고, 명찰을 벗었다.
명찰을 주최 측에서 걷어갔으며, 방재복은 방 닦을 때 입으면 된다며 마을 사람들에게 남겨졌다.
친구와 나는 오후에 진행 될 의료 훈련을 마저 참관하고 돌아기로 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간이식당이 차려진 곳으로 돌아와 밥을 먹었다.
오후 훈련은 기자들 외에 보는 사람 없이 의료행위 관계자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방사능에 오염되어 처리를 받아야 할 환자는 총 10명. 원자력 의학원과 부산과 울산 대학병원에서 파견된 훈련생들이 방사능에 오염된 환자를 처리하는 훈련을 하였다. 일반인 이었던 우리는 주최 측에 의해 가까이 가서 보는 것도 금지 되었다.
곧 지루해진 우리는 오늘 훈련 참관을 마치기로 하고, 기나긴 신고리 1,2,3,4호기 건설 현장을 지나 월내로 다시 돌아왔다.
오늘 훈련의 참가는 개인적으로 아주 뜻 깊은 것이었다. 그간 고리1호기 수명연장 반대 운동을 하며 노후 된 핵발전소의 위험성과 주민대피 등에 대해 계속 강조를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훈련은 정말 실망이었다.
사고에 대비한 주민과 일개 평범한 사람들의 대처 요령을 배울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는 달리 아주 큰 행사의 엑스트라 출연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역시 아니나 다를까. 이번 훈련에 대한 후속 보도도 아주 거창하게 잘 되었다. 6천 5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번 훈련에 참가했다는 것이다. 훈련에 참여한 군인, 의료팀, 주민들을 아무리 넉넉잡아도 500명이 안 될 터이니, 오늘 우리는 6000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서 “쑈”를 한 것이다.
방사능방재 훈련은 만약의 핵발전소 사고에 대비하여 주민들과 시민, 그리고 각 기관들이 실제 적용할 수 있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 각 전문 기관들이 이번 훈련으로 사고에 대비하여 얼마나 잘 훈련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을 주민과 시민들은 사고에 대비하여 어떠한 훈련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용의 실효성에 있어서도 의문이다.
마을 주민들은 사고가 발생했을 시 처음 모여야 할 장소가 월내초등학교 인지도 모를뿐더러, 이 초등학교는 핵발전소 바로 100M이내 거리에 있어 누가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났는데, 핵발전소 최 인근인 이 초등학교로 모이겠냐는 것이다.
사전 대비와 관련해서도 문제가 있다.
방독면은 개수가 모자랄 뿐만 아니라, 직접 효용이 있는 요오드 약의 경우에는 마을별로 비치되어 있지도 않다.
주민들과 학생들에 대한 핵발전소 사고의 위험과 위험 대처에 대한 교육은 정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실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주민들과 시민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진짜 훈련이 필요하다.
어제와 같이 황당하고 어이가 없는 훈련, 행사성, 전시성, 동원성 훈련이 다시 이루어 져서는 안 될 것이다.
부산청년환경센터 활동가 정수희
작성 2008. 5. 16
어제 부산의 기장에서 지진을 가정한 방사능방재 훈련이 있었다. 작년과 올해 일본과 중국을 강타한 지진 소식에 핵발전소가 8기나 들어서있는 기장의 상황이 영 불안하던 차에, 지자체와 한국수력원자력이 함께 대규모 방사능 방재 훈련을 한다니, 시민으로서 그 자리에 참석도 하고 사고에 대비한 훈련도 하고자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기장에 갔었다.
핵발전소가 바로 앞에 내다보이는 월내마을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 18분. 사고 발생 가정 시각은 오전 9시. 이미 마을 사람들이 훈련에 참여중이라 집 밖을 나오지 않아 거리가 이렇게 한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을은 텅 비어 있었다.
나와 친구는 고리에 낚시를 하러 온 관광객임을 가정하고 방파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언론에 발표된 매뉴얼에 따르면, 11시경부터 마을 주민의 대피 명령이 이루어져 특정한 장소에 집합, 이동이 시작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10분이 흘러도 20분이 흘러도 훈련과 집합, 이동에 관한 방송이 나오지 않았다.
방파제로 들어오면서 11경에 마을 사람들이 옆 마을 초등학교로 모인다는 마을 어른의 이야기를 들은 터라, 적어도 비상 사이렌 소리라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 우리는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지만 서둘러 인근 초등학교로 발을 돌렸다.
오전 11시 2분.
고리핵발전소 정문과 직선거리로 100M도 안 되는 자리에 위치한 월내 초등학교에 도착하였다. 마을이 무척 한산했던 터라 마을 주민이 여기에 다 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는데, 웬걸- 마을 운동장에는 100명도 되지 않은 주민들만이 하얀 방재복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마을 주민들 틈에 끼어 이번 훈련에 참여를 하고 싶으니 우리에게도 방재복을 달라고 관계자 인듯한 사람에게 말 하였다. 그러나 주민 인원수에 맞추어 방재복이 나온 것이라 여유가 한 벌도 없다고 하였다. 하는 수 없이 우린 방재복 없이 이번 훈련에 참여하기로 했다.
오전 11시 9분.
초등학교가 위치해있는 길천마을에서 마을 방송이 나왔다. 조금 후 40분부터 훈련이 시작되어 업무대피 및 차량통제 등이 실시될 터이니 놀라지 말라는 방송이었다.
오전 11시 20분.
노란색 분홍색 옷을 입은 초등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훈련의 제목에 「주민과 학생이 함께하는」이라는 소재목이 같이 붙어 있던데, 학생들도 이번 훈련을 통해 사고에 대비한 훈련을 할 수 있겠거니 생각하였다. 그러나 훈련에 참여한 학생들은 학교의 5학년과 6학년뿐이었다. 한 학생에게 이런 훈련을 언제 도 한번 해 보았냐고 물었는데 기억이 없다고 하였다.
그래도 핵발전소 바로 앞 100M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사고에 대비한 훈련이 학생들에게는 너무 이례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어른들과는 달리 노란색 분홍색 비옷을 입은 학생들은 비라도 엄청 내렸으면 좋겠다며 자기들 끼리 떠들며 장난을 하였다.
오전 11시 30분
우왕좌왕하던 마을 사람들이 버스에 탑승하라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6대의 버스에 나눠 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문제가 발생했다. 학생들이 타는 버스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탈 버스, 비교적 젊은 사람들이 타는 버스가 정해져 있는데, 통솔이 제대로 되지 않아 버스를 탔다 내렸다 이것만은 제대로 사고 상황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차량 통제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아, 버스를 탑승 하는 중에도 일반차량이 지나다녀 사람과 차량이 엉키고 난리 법석이었다.
아이들은 스승의 날이라 그런지 예쁜 치마와 구두를 신은 선생님을 따라 앞 쪽의 차와 뒤쪽의 차에 나누어 탔다.
오전 11시 37분.
100여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6대의 차량에 나눠 타고 출발하는데 까지 7분이 넘게 걸렸다.
오전 11시 51분.
훈련이 이루어지는 원자력교육원 정문에 도착하였다. 버스 문이 열리고 예닐곱 명의 사람들이 버스에 더 탔는데, 뭔가를 받았느니 안 받았느니를 큰 목소리로 이야기 하였다. 뭔가 불안한 마을 주민 중에 한명이 뭘 받아야 하냐고, 우린 받지 않았다고 말 하였으나 지휘자인 듯한 사람은 말대꾸도 하지 않았다.
버스는 계속 움직이지 않았다.
막간을 이용하여 이번에 어떤 훈련이 이루어지냐고 마을 분들 몇 분께 물었다. 그분들은 마을에서 태어나 지금도 마을에서 직책들을 하나씩 맞아 일을 하시는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란 대답과 ‘태어나서 처음’이라는 대답을 해 주었다. 이장님은 마을 사람들이 사고가 발생했을 시 ‘초기집합장소’도 잘 모르고 있다며 걱정하셨다.
오전 11시 56분.
어떤 훈련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계속 기다림. 차는 움직이지 않음.
오전 11시 57분.
앞쪽에서 곧 세차를 하니 창문을 닫으라는 지시를 하였다.
이장님과 군에서 나눠준 이번 훈련과련 유인물을 함께 보았다. 사고가 발생했을 시 착용할 마스크와 응급처치 약에 대한 소개 가 있었다. 그러나 이장님은 마스크가 사람 수 만큼 배정 된 것이 아니라 가호 당 하나씩 배정이 되어 있어서, 만약에 사고가 날 경우 집안 식구 끼리 싸워야 된다며 웃으셨다. 또 유인물에 분명히 적힌 사고 직후 복용해야 할 ‘알약’ 과 관련하여, 유인물에는 각 이장집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시만 정작 자신은 가지고 있지 않아다며 유인물의 잘못을 지적하였다. 또한 ‘보건셋트’와 관련하여서는 전국 어느 마을에나 있을 것을 특별한 것인 양 홍보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하셨다.
오전 12시 1분.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 쪽에 ‘제염장치대’라 적힌 설치물이 보였다. 아까 말한 차량 세차를 하는 것이다. 앞에서 내릴 준비를 하라는 말이 들렸다. 나는 마을주민 한명이 참여하지 않아 남게 된 방재복을 입고 나길 준비를 하였다.
오전 12시 4분.
버스에서 내리라는 방송이 들렀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오른쪽에 무대를 차려놓고 천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사회자가 두 명이었는지 한명이었는지도 기억하지 않는데, 아주 세련된 말투를 가진 목소리가 우리가 곧 방사능 노출 정도를 검사하는 검사대를 지날 것이라 말 하였다.
앞쪽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언론사 취재 카메라와 옆쪽에는 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의 시선. 완전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제야 아까 버스에서 뭔가를 나눠받은 사람들이 뭐 하는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검색대에서 방사능 노출된 사람들을 검색할 될 수 있도록 특별한 장치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우리를 구경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두 줄로 나뉘어져 짧은 검색대를 통과 하였다. 특별한 장치를 가진 사람들도 함께 검색대를 통과 하였는데, 검색대를 지나고 난 다음에 그 사람과 우리는 따로 분류가 되지 않고, 그냥 그 대로 줄을 서서 수 천 명의 관중의 옆을 지나갔다.
줄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몰랐다. 그냥 앞쪽을 따라서 계속 갔다. 우리 옆의 군중은 없어지고 앞쪽으로 밥 차와 수십 개의 파라솔, 수백 개의 의자들이 보였다.
“뭐- 꼬? 밥 묵는기갑다.”
내 뒤의 할아버지가 말했다. 뒤로는 허남식 부산시장의 인사말이 들렸다.
“......”
“뭐 했다고 밥 묵어요?”
뒤따라오는 남자 아이도 말했다.
결국 두 줄은 밥 먹는 두 줄로 변하였고, 나는 밥줄에 서게 되었다.
너무 어이가 없고 황당했다. 적십자에서 나온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밥을 퍼 주고 있고 우린 식판을 들고 밥을 먹어야 했다. 아니, 사실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났을 경우 우리는 이와 같은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이 오늘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겠지.
아무도 자신을 지킬 방법을 모르며, 방사능을 잘 막아낼지 의문스러운 방재복과 방독면(하물며 부족하기 까지 한!), 감상선 암을 예방해 줄 알약은 읍에 하나 있는 보건소에 가야지만 받을 수 있고, 대피를 위해 버스를 탄다고 하더라도 어디로 가는지, 어떠한 조취가 취해지는지도 모르고 따라가겠지.
도저히 밥을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방재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덥기도 무진장 더웠다. 방재복을 입지 않으면 훈련에 참가 할 수 없다는 마을 주민들의 말이 생각났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을 지나가는 쑈를 해야 했으니, 무대복은 필수였겠지.
마을 주민들은 “쑈에 동원되었다.”는 씁쓸한 이야기를 하며 적십자 아주머니 아저씨가 나눠준 밥을 하얀 방재복을 입고 먹었다.
나는 마을 주민들이 점심 식사를 하는 동안에 행사장 주변으로 가 보았다. 방사능 방재에 필요한 여러 군사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옆쪽에는 아주 멋진 자연현상 사진이 전시 되어 있었고, 오후 훈련을 기다리는 듯 텅 빈 의료천막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다시 버스로 돌아갔다.
버스 앞에서 방재복을 벗고, 명찰을 벗었다.
명찰을 주최 측에서 걷어갔으며, 방재복은 방 닦을 때 입으면 된다며 마을 사람들에게 남겨졌다.
친구와 나는 오후에 진행 될 의료 훈련을 마저 참관하고 돌아기로 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간이식당이 차려진 곳으로 돌아와 밥을 먹었다.
오후 훈련은 기자들 외에 보는 사람 없이 의료행위 관계자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방사능에 오염되어 처리를 받아야 할 환자는 총 10명. 원자력 의학원과 부산과 울산 대학병원에서 파견된 훈련생들이 방사능에 오염된 환자를 처리하는 훈련을 하였다. 일반인 이었던 우리는 주최 측에 의해 가까이 가서 보는 것도 금지 되었다.
곧 지루해진 우리는 오늘 훈련 참관을 마치기로 하고, 기나긴 신고리 1,2,3,4호기 건설 현장을 지나 월내로 다시 돌아왔다.
오늘 훈련의 참가는 개인적으로 아주 뜻 깊은 것이었다. 그간 고리1호기 수명연장 반대 운동을 하며 노후 된 핵발전소의 위험성과 주민대피 등에 대해 계속 강조를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훈련은 정말 실망이었다.
사고에 대비한 주민과 일개 평범한 사람들의 대처 요령을 배울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는 달리 아주 큰 행사의 엑스트라 출연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역시 아니나 다를까. 이번 훈련에 대한 후속 보도도 아주 거창하게 잘 되었다. 6천 5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번 훈련에 참가했다는 것이다. 훈련에 참여한 군인, 의료팀, 주민들을 아무리 넉넉잡아도 500명이 안 될 터이니, 오늘 우리는 6000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서 “쑈”를 한 것이다.
방사능방재 훈련은 만약의 핵발전소 사고에 대비하여 주민들과 시민, 그리고 각 기관들이 실제 적용할 수 있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 각 전문 기관들이 이번 훈련으로 사고에 대비하여 얼마나 잘 훈련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을 주민과 시민들은 사고에 대비하여 어떠한 훈련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용의 실효성에 있어서도 의문이다.
마을 주민들은 사고가 발생했을 시 처음 모여야 할 장소가 월내초등학교 인지도 모를뿐더러, 이 초등학교는 핵발전소 바로 100M이내 거리에 있어 누가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났는데, 핵발전소 최 인근인 이 초등학교로 모이겠냐는 것이다.
사전 대비와 관련해서도 문제가 있다.
방독면은 개수가 모자랄 뿐만 아니라, 직접 효용이 있는 요오드 약의 경우에는 마을별로 비치되어 있지도 않다.
주민들과 학생들에 대한 핵발전소 사고의 위험과 위험 대처에 대한 교육은 정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실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주민들과 시민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진짜 훈련이 필요하다.
어제와 같이 황당하고 어이가 없는 훈련, 행사성, 전시성, 동원성 훈련이 다시 이루어 져서는 안 될 것이다.
부산청년환경센터 활동가 정수희
'기사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美 DOE, GNEP(글로벌 핵에너지 파트너쉽) 취소를 발표 (0) | 2009.04.20 |
---|---|
풍력발전기 파손 사고, UFO와 충돌?? (1) | 2009.01.09 |
인도네시아 진흙화산 2년간 '펑펑'…12개 마을 삼켜 (0) | 2008.05.30 |
일 음악가 사카모토 반핵운동 나서 (0) | 2008.05.18 |
한달만에 사라진 ‘유류세 10% 인하 효과’ (0) | 2008.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