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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후핵연료 관리의 사회적 논의 방안과 원칙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주최 "제7회 방사선안전 심포지엄"
발표 요약문 (2008.11.) / 발표문(PPT)는 첨부



사용후핵연료 관리의 사회적 논의 방안과 원칙

 

이 헌 석

청년환경센터

E-mail: ecenter@eco-center.org

 

중심어 :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사회적 논의, 방사성폐기물, 재처리



 

서 론

20여년간 혼란을 낳으며 진행된 우리나라의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부지선정 논란은 안면도와 굴업도, 부안을 거치면서 많은 교훈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20여년이라는 오랜 세월과 많은 사회적 비용이 지불되는 과정에서 과학기술적 접근만을 갖고 문제를 풀수 없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게 되었으며, 사회적 수용성과 신뢰관계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하였다.

그러나 2005년 경주, 군산, 영덕, 포항 등 4개 지역을 대상으로 한 중저준위방폐장 주민투표는 지역주민들에 의한 주민투표라는 절차상 민주주의적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3000억원 + 알파’라는 거액의 보상금과 한수원 본사 이전, 양성자가속기건설, 추가 지원책 마련이라는 금전적 지원을 앞세운 방식이었기에 실질적 민주주의를 오히려 훼손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한수원 본사이전 위치 문제,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위치선정문제, 양성자가속기 부지매입비용문제 등 2005년 주민투표를 통해 중저준위방폐장 부지는 확정되었지만, 보상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점들은 아직도 중저준위방폐장 문제가 우리사회에서 해결된 사안이 아니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재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을 공론화 하는 것은 이러한 출발선 상에 있으며, 핵연료재처리를 둘러싼 국제사회와의 관계 문제, 최종처분 기술의 미비, 중간저장 방법과 기간을 둘러싼 논란 등 사용후핵연료 문제가 갖고 있는 고유한 문제와 맞물릴 경우,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선정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사회적 갈등이 예상된다. 더구나 최근 정부가 국가에너지기본계획 등을 통해 핵발전소 비중을 60%선까지 올릴 계획을 갖고 있는 등 핵발전을 둘러싼 다른 갈등까지 예상되고 있어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더욱 복잡한 양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주 중저준위방폐장 주민투표의 교훈

 

2005년 11월 2일. 89.5%의 찬성율로 경주가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로 결정되었다.

 

Table 1. 주민투표 이후 경주지역의 주요 갈등

갈등내용

경과

비고

한국수력원자력본사이전 논란

경주 양북면 장항리로 결정

격렬한 지역주민 집회 진행. 최근 지역정치인 등이 경주시내 이전을 주장. 새로운 갈등 시작

월성 핵발전소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고 증설

계획대로 건설 중

방폐장 특별법에 고준위폐기물처분시설이 들어서지 않는다는 단서가 있어 시의회등이 반발. 그러나 임시저장고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해석.

지원사업비 문제

유치지역지원위원회가 62건 4조5623억원로 확정

경주시는 애초 8조 요청. 이후로도 사업비 집행문제로 갈등(2년간 7%인 3301억원만 집행)

양성자가속기 건설 분담금

미정

방폐장 유치시 경주시가 부담해야 할 1604억원 중 1304억원 정부지원요청. 이후 지원요청 액수는 변동.

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위치문제

경주로 확정.

원래 방폐장 공약사항에 없었으나 지역반발로 추가. 세부위치는 논란 중

 

 

그러나 20여년 갈등의 끝이라던 경주 방폐장 부지 선정은 새로운 갈등의 시작이었다. 표 1에서 보듯 방폐장 유치 공약사항을 바탕으로 갈등은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주민투표가 끝난지 3년이 다 되었지만, 아직도 경주에는 방폐장 관련 플랭카드가 나붙고 집회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특이할 만한 것은 이러한 갈등이 과거 방폐장 유치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였던 지역인사들과 경주시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주민투표라는 형식에만 치우친 나머지 실질적 토론이 이루어지 못한 2005년 방폐장 부지선정의 한계점을 그대로 드러내는 결과이다. 각종 지원금 약속은 그 이행 시기와 방법을 둘러싼 논란을 낳게 되었고, 이와 별도로 더 많은 지원요구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또한 경주 시내지역과 동경주지역이라는 애초 예상치 못한 갈등요인으로 인해 한수원본사 이전과 같은 지역지원계획이 새로운 갈등을 야기하는 것 역시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근시안적 정책이 낳은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이다.

사용후핵연료(고준위폐기물)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고준위폐기장은 얼마를 지원해 줄 것인가와 같은 지원금 이야기들이 먼저 나오고 있는 현실은 향후 정책 수립에 있어 반드시 짚어야할 교훈이며, 극복해야할 과제일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둘러싼 과제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중저준위폐기물과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문제를 달리한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의 첫 번째 과제는 재처리 여부 문제에 대한 결정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사용후핵연료를 고준위폐기물로 규정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한미원자력협정, 한반도비핵화선언 등으로 통해 재처리시설을 갖지 않기로 선언한바 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원자력계 일각에서 pyro-process 등의 기술을 이용해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기위한 논의들이 되고 있는 것은 그 기술의 경제적, 기술적 타당성 문제를 떠나 우려스러운 일이다. 이를 재활용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플루토늄 추출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나 사용후핵연료를 폐기해야할 ‘폐기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서 본다는 측면에서 우리나라도 핵재처리 국가로 나선다는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둘째, 핵발전소 증설과 사용후핵연료 처분의 관계 문제 역시 피할 수 없다. 애초 국가에너지위원회에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때에는 원전적정비중을 별도로 논의하는 가운데 이미 만들어진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처리를 중심으로 공론화 논의가 이어졌다. 그러나 지난 8월 시민단체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0기의 핵발전소를 추가로 짓는 등 전체 전력의 60%를 핵발전이 담당하도록 계획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의 공론화는 꾸준히 핵발전소를 증설할 수 있도록 하는 논의라는 비판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사용후핵연료의 특성상 임시저장고 증설 혹은 중간저장시설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최악의 경우 핵발전소 운영을 중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가 사용후핵연료 문제 공론화를 어떤 카드로 시작할 지는 이후 공론화 논의에서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셋째, 사용후핵연료 문제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기술적 접근이 너무나 부족하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사용후핵연료가 정확히 어떠한 물질인지 모르고 있으며, 이의 처분에 대한 기술적 연구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는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이 20여년이상 관련 한 연구, 개발에 투자를 해 온 곳과 대별되는 일로서 이미 방폐장 주민투표로 ‘방폐장=돈’이란 인식이 확산된 상황에서 핵발전 정책이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문제를 둘러싼 정책적 논의보다는 ‘지원금 따내기 싸움’으로 이 문제가 고착될 위험성이 크다. 이는 핵발전이나 폐기물 정책을 결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와 유사한 국가적 정책을 수립함에 있어 정치적으로 올바르며,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는 기회를 버리는 일로서 국가정책수립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문제는 많은 세부적인 문제와 한번도 논의해보지 못한 문제들이 숨어있다. 재처리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한다면 국내에서할 것인가 국외에서 할 것인가? 하지 않는다면 처분할 것인가 지켜볼 것인가? 중간저장은 할 것인가? 지금처럼 임시저장을 지속할 것인가? 한다면 어디에 할 것인가 등 사용후핵연료 관리와 처분을 둘러싼 질문들은 끊임없이 많고 따라서 이는 일반 시민들뿐만 아니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꺼리이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의 원칙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이제 도마 위에 갓 올라와 있는 단계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원칙들이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이다.

먼저 정부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의 첫 단추를 잘 풀어가야 할 것이다. 공론화의 핵심은 상호 신뢰와 진정성에 있다. 공론화 논의를 통해 충분한 논의와 책임있는 결정이 나올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이것은 또다시 정부의 일방적인 발표로 이어진 과거의 전례와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얼마 전 정부가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통해 핵발전 비중을 60%까지 올리겠다고 발표한 것은 매우 선급한 판단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간 핵발전소 지역주민과 환경단체들은 핵발전소 건설이 자신의 뜻과 별도로 이루어진 것이라 비판해 왔다. 즉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발전소를 계속 지어왔으며, 고준위폐기물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핵발전소의 문제점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핵발전소를 추가로 더 지어야 하니 그 방안을 함께 논의하자는 방식에 흔쾌히 동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는 여기에 덧붙여 핵발전소를 더 지어야 하니 폐기물문제도 협의해 달라고 하는 형국으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진정성을 갖고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이미 만들어진 사용후핵연료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이에 상응하는 카드를 내 와야 하는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논의의 범위, 주체, 논의 방식 등 ‘공론화에 대한 공론화’부터 시작하여 관련한 이해당사자들이 관심을 갖고 공론화에 뛰어들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공론화의 추진 방법과 내용은 법과 제도에 의해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영국 등 공론화 방식을 먼저 실행한 국가들의 교훈은 이러한 방식을 법-제도의 틀로 끌어들여 책임있는 논의를 이끌었다는 점이다. 법적구속력없는 몇 차례 여론조사와 토론회나 공론화 방법에 대한 용역연구와 같은 과거 시행했다가 실패한 것들을 다시 활용하는 것은 사회적 논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방법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정부를 포함한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논의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미 지식경제부를 중심으로 공론화 논의가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과학부는 미래원자력로드맵을 통해 2015년 중간저장시설완공, 2028년 고준위영구처분장 운영을 밝히고 있는 것이 정부의 현실이다. 이는 아직 사용후핵연료 문제가 정부내부에서조차 합의되지 않았다는 증거이며, 이는 원자력계내부, 지역사회내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충분히 공론화 논의에 참석하지 못할 경우, 공론화 추진은 예산만 낭비하고 결론을 얻지 못한 정책추진사례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다.

 

 

결론

 

우리사회에서 사회적 논의, 공론화란 말은 아직 낮선 표현이다. 충분한 시간을 가진 토론을 해 본 경험도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가운데 사용후핵연료 문제 공론화 추진은 단지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사회의 갈등해결 노력과 논의수준을 한 단계 높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칫 잘못된 방향으로 이 문제가 풀어질 경우, 아직 피어보지도 못한 공론화 방법론은 정책실패사례로 묻혀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상호신뢰와 진정성에 기반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사용후핵연료 공론화가 제대로 추진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