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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종합대책와 핵산업 육성의 문제점

2008.10.20. 녹색연합토론회 "시민, 기후변화를 이야기하다 - 기후변화종합기본계획과 우리의 미래" 토론문

기후변화종합대책와 핵산업 육성의 문제점

 

이헌석(청년환경센터)

 

기후변화종합대책이 아니라 ‘산업육성계획’

지난 9월 총리실이 발표한 기후변화대응 종합기본계획(이하 기후변화기본계획)은 기후변화문제에 대응한다는 원래 취지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며칠 뒤 지식경제부 신성장동력기획단이 발표한 신성장동력 비전과 발전전략(신성장동력전략)의 기후변화버젼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기후변화기본계획의 추진과제로서 가장 먼저 ‘기후친화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거나 ‘시설확충’, ‘투자’, ‘수출산업화’와 같은 단어들이 주로 등장하는 것도 있지만,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원래 목적은 뒤로 한 채 며칠 뒤 지식경제부가 미래성장동력이라며 발표한 내용과 별반다르지 않은 내용들은 기후변화를 중심으로 과장하여 발표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의 대책으로서 핵발전소를 증설하는 것이 효과가 있을 지에 대한 논쟁은 그동안 국가에너지기본계획 논쟁을 통해서도 몇 차례 언급된 바 있으므로 그 보다는 기후변화기본계획 곳곳에서 나타나는 핵산업 육성 및 활성화를 먼저 언급하고자 한다.

 

기후변화기본계획에서의 핵산업 육성

기후변화기본계획에서 정부는 국내 핵발전 비중을 2007년 26%에서 2030년 41%(설비비중 기준. 발전비중에서는 35.5%->59%)로 확대시키고 원전 설비 및 인력 수출을 확대하여 2007년 5,800억원인 수출 금액을 2012년 11,700억원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또한 한국형 원전이 수출될 경우, 5만명의 고용효과와 5조원의 수출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내용을 함께 밝혀 기후변화와 고용창출이라는 두가지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기후변화기본계획과 국가에너지기본계획, 그리고 원전플랜트 수출을 2012까지 이루어 우리나라의 신성장동력으로 삼고자하는 신성장동력전략에 모두 반복적으로 표현되는 내용으로 30여년 역사의 우리나라 핵산업계의 숙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우리에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회사명

수주내용

계약금액(천불)

한수원(주)

중국 광동원전 1단계 운영정비기술지원 등 23건

10,780

두산중공업(주)

중국진산원전 2단계 3,4호기 원자로공급 등 9건

602,030

한국전력기술(주)

대만용문원전 기술지원 용역 등 38건

35,000

현대건설(주)

터키 아쿠유 원전 입찰평가서 용역사업 등 1건

170

대우건설(주)

대만 용문원전 기술자문계약 등 3건

26,894

한전KPS(주)

미국 원자력 내장품 정비 등 110건

12,770

원전연료(주)

웨스팅하우스사 기술용역사업 등 28건

10,182

원자력연구소

이리듐 방사선원 어셈블리 수출 등 125건

13,118

합계

710,944

<표> 한국 원전산업체 해외원전사업 수주현황(1993~2007)

 

그동안 언론과 핵산업계는 마치 국내 원전이 해외로 수출된 것인냥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직 단 1기의 핵발전소 해외 수주를 따내지 못했다. 최근까지 언론에 오르내리던 터키의 경우, 터키내 법률-제도적 문제와 핵산업계의 담합으로 유찰되어 버렸고, 루마니아, 인도네시아, 중국 등 언론에 많이 언급되고 있는 것 역시 경우에 따라 MOU 등이 체결되기는 하였으나, 수주하고자 하는 염원을 핵산업계가 갖고 있을 뿐 실제적인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세계 주요 핵발전소 플랜트 업체들이 통합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소위 「원자력 암흑기」 - 요즘 핵산업계의 ‘원자력 르네상스’ 주장은 이 암흑기를 전재로 한 표현이다 -를 거치면서 거대한 핵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서구 각국의 업체들은 국경을 넘어 이합집산을 단행한다. 독일의 siemens가 관련 부분 사업을 접은 것을 비롯, 여러 단계의 인수합병을 거듭했던 ABB가 결국 WH에 인수되고, WH마져도 도시바에 인수되는 먹고 먹히는 인수합병전쟁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통합과정을 거치면서 도시바는 전세계 상업용 원자로의 큰 축인 PWR과 BWR 기술을 모두 갖는 거대 공룡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고, 이후 프랑스의 AREVA와 미쯔비시의 제휴, 히타치와 GE의 재편 등이 이어지면서 전세계 핵산업계는 3마리 공룡이 싸우는 각축장으로 변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BWR은 관련 기술을 갖고 있지도 않으며, PWR의 경우에도 GE기술을 바탕으로 ‘한국형 원전’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나 아직도 상당부분의 기술을 외국업체들이 갖고 있는 것이어서 중국을 중심으로 메이져 핵산업계 업체들의 각축장에 명함을 내밀기는 쉽지 않다. 또한 최근 언급되고 있는 터키, 루마니아 등 마이너 시장에서 1~2개 정도의 수주를 한다 할지라도 대부분 메이져 업체들을 중심으로 생성되어 있는 국제 핵발전소 건설 시장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여전히 미지수이다. 그리고 현재 이러한 일들이 대부분 국가주도의 수출성장 동력으로 포장되고 지원되고 있다는 현실은 핵발전이 환경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점을 빼놓더라도 진정한 의미의 ‘국가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지 보다 냉철한 판단이 필요할 것이다.

 

<그림> 세계 주요 플랜트 메이커의 변천

 

핵산업 육성과 유지를 위한 R&D 예산 문제 투입

구분

‘07

‘08

‘09

‘10

‘11

‘12

‘13

‘14

‘15

총계

원자력발전기술개발사업

508

554

602

648

718

789

856

928

989

6,592

원전기술혁신분야

160

160

160

160

162

180

204

214

224

1,624

668

714

762

808

880

969

1,060

1,142

1,213

8,216

<원자력발전기술개발사업 투자계획(단위: 억원)>

 

현재 핵발전 관련 기술은 ‘원전기술발전방안(Nu-tech 2015)'에 의해 지식경제부가 전력산업기반기금, 원자력연구개발기금 등 매년 수백억원의 돈을 쏟아 붇고 있다. 원자력발전기술개발사업은 전기요금의 3.7%를 일률적으로 조성한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사업비를 충당하고 있으며, 원자력연구개발기금은 발전사업자인 한수원이 출자하는 금액으로 둘다 사실상 전기요금에서 지출되고 있는 금액이다.

이들 기금은 형식상 실용화기술(전력산업연구개발사업)과 기초기술(원자력연구개발사업)으로 구분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경계가 모호하고, 중복되는 사업도 많으며, 원자력연구개발기금의 경우, 기금으로서의 성격보다는 예산으로서의 성격이 많아 매번 지적되어 오던 내용이다.

또한 전력산업구조개편과 함께 만들어진 전력산업기반기금의 이용과 관련해 공익적 목적에 써야 하는 기금의 원래 목적과 원자력기술개발이 적합한지에 대한 논란은 같은 기금을 사용하고 있는 원자력문화재단 지원의 적법성, 발전소주변지역지원 사업의 올바른 집행과 함께 계속 지적되던 사안이다.

 

진정으로 정부가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하고 기후친화적 산업을 육성하고자 한다면, 핵발전관련 연구기금을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풍력, 태양광과 같은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연구개발은 물론이고, 사용후핵연료 저장-처분과 같은 기술 역시 연구개발의 기간이 짧고 관련 지원이 다른 핵산업기술에 비해 적은 편이다. 이는 기술습득->핵산업육성->기술자립->해외수출이라는 장밋빛 환상만을 쫒을 뿐 실제 우리에게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에 대한 판단이 없는 가운데 ‘하면된다’는 70년대 식 방식으로 많은 예산을 낭비해 왔기 때문이다.

 

핵발전중심의 전력정책 : 더 이상 재검토하지 않으면 파국을 맞을 수 있다.

기후변화가 세계적인 이슈로 부각하기 이전부터 서구유럽은 안전성 문제 때문에 ‘탈핵발전’

을 고민해왔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은 20여년이 지난 지금 재생에너지 열풍의 주요한 동력이 되고 있다. 앞서 살펴본 주요 핵산업체의 변천과정에서 보듯 거대 장치산업이며 자본집약적인 핵산업을 유지시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급변하는 에너지 정세에서 보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판단하는 혜안이 없다면 언제나 결론은 ‘파국’이다.

그동안 많은 양의 세금과 준조세적 성격의 기금을 이용해 우리나라의 핵산업은 자신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정부의 계획처럼 핵발전의 비중을 - 매우 극단적인 수치이지만 - 60%까지 올린다 한들, 이는 2030년이 지나면 더 이상 발전소를 지을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겉으로는 ‘원자력 르네상스’를 외치고 있지만 치열한 각축장인 전세계 핵발전소 수주 현장에서 한국 핵산업이 자신의 활로를 찾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핵산업계의 입장이다. 처음의 선택은 미쳐 국민들이 할 수 없었지만, 이후의 선택은 국민들이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을 향해 - 그것이 ‘르네상스’라고 달려가는 핵산업계의 손을 우리가 잡아줄 필요는 없다. 국가에너지정책과 향후 성장동력을 제대로 선택하는 의미에서라도 우리는 이제 핵산업계의 손을 놓아주어야 한다. 그리고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우리의 에너지시스템이 변화할 수 있도록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파국을 막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우리에게 얼마 남지 않았다. 20여년 남아있는 2030년까지 우리가 어떤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에너지시스템을 가져갈 것인가를 바로 지금 선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