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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_보도자료_알림

[성명서] 고속로와 핵연료재처리가 주도하는 녹색성장계획이 오히려 ‘녹색’을 갉아먹고 있다. - 255차 원자력위원회의‘미래 원자력연구개발 중·장기 계획’에 대한 청년환경센터 입장


<청년환경센터 성명서>

 

고속로와 핵연료재처리가 주도하는 녹색성장계획이 오히려 ‘녹색’을 갉아먹고 있다.

- 255차 원자력위원회의‘미래 원자력연구개발 중·장기 계획’에 대한 청년환경센터 입장 -

오늘(22일) 255차 원자력위원회(위원장 한승수 국무총리)는 ‘미래 원자력시스템 연구개발 장기추진계획(이하 미래원자력계획)’을 심의·확정하였다. 이 계획은 “원자력을 저탄소 녹색성장의 핵심 축으로 강조”하며, 차세대 원자로 기술의 하나인 소듐냉각고속로(SFR)와 이를 연계한 파이로(Pyro)핵연료 기술개발, 핵발전을 이용한 수소생산시스템(VHTR) 등에 대한 신기술 개발 계획을 담고 있다.

그동안 미래원자력계획은 많은 논란꺼리가 있음에도 공론화과정 없이 핵산업계 내부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추진되어 왔다. 프랑스, 일본 등이 안전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강행하면서 재정만 낭비시켰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고속로 개발계획이나 한정된 우라늄 자원의 한계를 넘고자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여 계속 사용하겠다는 후행핵연료주기계획(파이로 핵연료 기술)은 모두 막대한 재정투자와 이후 에너지정책에 큰 영향을 미침에도 불구하고 그 실효성이나 현실성을 따져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여 상업용 발전소에 사용하기 위한 파이로 핵연료 기술의 경우, 현재 발효 중인 한-미 원자력 협정이나 한반도 비핵화선언이 상업적 이용은 물론이고, 이에 관련한 연구-개발까지도 철저히 금지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과학기술부는 그동안 ‘한미원자력 협정을 개정해서라도’라는 옹색한 단서를 붙여가면서 핵산업계의 입장을 적극 옹호해왔다. 가뜩이나 북한 핵무기 보유문제로 한반도에 시선이 집중된 지금, ‘핵비확산성’이 보장된다거나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가 아니라 재활용이라는 한국 정부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또한 재처리여부를 포함하는 사용후핵연료의 관리는 정부가 그동안 국민적 공론화과정을 거치겠다고 약속해 온 내용이다. 2004년 253차 원자력위원회를 통해 ‘고준위폐기물(사용후핵연료)는 중장기적으로 검토하여 국민적 공감대하에 추진’하기로 결정한바 있다. 이는 사용후핵연료 문제가 단지 방폐장 부지를 정하는 것으로 결정될 수 없으며, 재처리여부, 관련 기술의 개발, 이에 따른 예산 편성 및 사회적 갈등, 국제사회와의 공조가 필요한 매우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올해 초까지 국가에너지위원회 산하에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TF가 구성되어 공론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년 만에 같은 위원회가 전혀 다른 결정을 내린 것은 원자력위원회가 스스로의 권위를 내 버린 것이며 앞으로 사용후핵연료 관리 공론화 문제 역시 논의과정 없이 정부 독단으로 추진하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한편 우리는 미래원자력계획이 그 실현가능성과 무관하게 ‘녹색성장’의 일환으로 계속 포장되고 있는 점을 주목한다. 최근 언론을 통해 밝혀진 것처럼 2009년 정부 ‘녹색성장 예산’ 중 핵발전 및 핵융합에 들어가는 예산이 무려 4683억원에 이른다. 이는 전체 녹색성장 예산의 10%에 해당하는 것으로 핵관련 예산이 ‘녹색’ 예산을 갉아 먹고 있는 좋은 예를 보여준다.

정부는 원자력산업을 증진시키는 것이 기후변화에 도움이 될뿐더러 국가 성장에도 주요한 동력이 될 수 있다고 계속 선전하고 있으나, 이는 현실과 다르다. 아직까지 핵발전은 기후변화협약이 인정하는 온실가스 저감수단으로 등록되지 않았으며, 일본 등 핵산업계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국가들의 제안에 따라 올해 의제로 올라오기는 했으나 핵폐기물 등 다른 환경문제로 인해 논란에 빠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핵산업의 국가성장동력 가능성의 경우, 원자력위원회에서도 검토된 것처럼 우리나라의 원자력기술은 아직 주요 원천기술들이 확보되지 않은 ‘원전기술 자립을 계획’하고 있는 단계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운영되고 있는 총 개수는 줄어들면서 매년 한 자리수를 겨우 채우고 있는 세계 신규원전시장이 정부나 핵산업계의 주장처럼 2030년까지 300기(900조원 규모)로 늘어날 것이라는 것도 믿기 힘든 일이지만, 아직 원천기술 자립도 하지 못한 한국 핵산업계가 이미 80년대, 90년대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거대 공룡만 남아 있는 세계 원전시장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것 역시 지나친 욕심이다. 거기에 애초 시장이 형성되지도 않은 중소형원자로 SMART 원전 기술까지 들고 나와, ‘연구개발만 하면 다 팔린 것처럼’ 홍보하는 일을 산업계가 아닌 정부가 앞장서고 있는 것은 정부가 기본적으로 해야 할 도리를 저버린 채 핵산업계에 의해 끌려 다니는 모습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전 세계는 이미 기후변화시대를 맞아 재생에너지로 급전환과 에너지 효율 향상을 선택하고 있다.

여기에 위기감을 느낀 핵산업계는 끊임없는 딴지걸기와 허황된 이데올로기 - ‘원자력 르네상스’를 유포하고 있다. 이미 서구 각국이 ‘탈핵(脫核)’으로 자신의 방향을 틀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흐름을 읽지 못하고 일부 남아 있는 ‘원자력 신화’에 빠져 예산과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핵산업은 재생에너지에 비해 시간과 예산이 많이 투여되는 산업이다. 한 번 투자할 경우, 기술의 잠금 효과(Lock-in Effect)가 커서 다시 빠져나오기 힘든 기술이다. 다시 말해 이미 투자해 놓은 돈이 아까워 갈 길이 아님에도 계속 돈을 쏟아 붓는 악순환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이 모순에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이제 핵발전을 ‘녹색’이라고 선전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진정한 ‘녹색’은 핵발전과 같이 위험성과 중앙집중성, 그리고 핵폐기물과 같은 돌이키지 못한 부산물을 만들지 않는다.

이제라도 원자력위원회는 오늘의 잘못된 결정을 돌이켜 사용후핵연료에 대해서는 국민적 공론화과정을, 미래원자력계획에 대해서는 전면 재검토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녹색’의 길이며, 기후변화시대 우리가 선택해야 할 ‘정도(正道)’일 것이다.

 

2008. 12. 22.

청년환경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