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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핵발전이 기후변화의 대안인가? -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오는 환경운동가들의 ‘찬핵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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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함께사는 길 원고. 2009.3.작성.>

 

정말 핵발전이 기후변화의 대안인가?

 

이헌석(청년환경센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오는 환경운동가들의 ‘찬핵 선언’

지난 2월 한 국내 언론은 인디펜던트誌 보도를 인용, 전 그린피스 영국지부 대표 스티븐 틴데일(Stephen Tindale)을 비롯 크리스 스미스(Chirs Smith) 영국 환경청장, 크리스 구달(Chris Goodall) 영국 녹색당 하원의원 출마자, 마크 라이너(Mark Lynas) 등 대표적인 환경운동가들이 핵발전소 건설을 촉구하고 나섰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핵발전소 건설을 촉구하는 것은 마치 종교의 개종이나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면서 쉽게 내린 결정이 아니라, 오랜 숙고 과정속에서 내린 결정이었으며, 바뀐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기사가 보도된 이후 필자는 ‘영국 그린피스가 찬핵으로 돌아섰다는 기사를 읽어봤냐’는 질문을 몇 차례나 들었다. 기사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없었지만, 천천히 기사를 읽지 않는 한 많은 이들은 이렇게 생각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핵산업계의 의도이기도 하다.

 

반핵운동을 계속 펼치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 몇몇 환경명망가들의 입장변화와 이에 대한 보도는 별로 새롭지 않은 일이다. 핵산업계는 1980-90년대 체르노빌 사고와 서구 유럽의 탈핵발전 열풍으로 ‘원자력 암흑기’를 겪으면서 끊임없이 핵발전을 옹호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인물’을 찾아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렵게 찾아낸 이들 동조자의 이야기는 항상 부풀려지고 확대 재생산되어 왔다.

 

이번에 나온 인디펜던트誌 기사를 다시 보자. 국내 언론에는 ‘환경운동가들(혹은 환경단체 지도자들)’이 입장을 바꾸고 핵발전소 건설을 ‘촉구’했다고 보도되었지만, 정작 인디펜던트誌에는 환경운동가(activist)라는 표현은 없고 4명의 주요 환경주의자들(leading-environmentalist)이 핵발전의 편에서 로비를 하고 있다(lobbying in favour of nuclear power)고 전하고 있다. 틴데일을 제외하고는 환경단체 지도자들이 아니고 그나마 틴데일도 현직이 아닌 ‘전직’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린피스와 유럽 녹색당연합은 이들의 입장에 동의하지 못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핵발전이 아니라 재생에너지원과 에너지 효율 향상이 유일한 답임을 다시 한 번 밝히고 있다. 원 기사에는 인터뷰기사이외에도 핵발전소 찬반을 둘러싼 서로 다른 2개의 기사가 함께 실렸지만, 국내 기사에는 최소한의 반박 기사도 없이 끝맺고 있다.

 

부풀려진 기사, 확대 재생산되는 담론

이와 비슷한 형태로 국내에 몇차례 소개된 바 있는 패트릭 무어(Patrick Moore)의 경우를 보자. 언론은 기회있을 때마다 그린피스의 공동창립자이자 30여년간 환경운동을 해 온 무어가 기후변화의 대안으로 핵발전소 건설을 주장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의 주장은 마치 전세계 환경단체들의 흐름이 이미 ‘찬핵’으로 돌아선 것처럼 포장되어 국내 찬핵인사들의 기고글에 빠지지 않고 언급되곤 한다. 심지어 어떤 글은 마치 그가 핵발전에 대한 입장차이로 인해 최근에 그린피스를 떠난 것처럼 다루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1971년에 학생 신분으로 그린피스에 참여한 그가 이미 1985년 그린피스와 결별했고, 이후 환경 컨설팅업체를 창업하여 벌목업체, 핵산업계와 화학산업계의 이해를 대변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심지어 그가 그린피스의 공동창립자(co-founder)의 한명으로써 큰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도 그 자신이 강하게 주장하는 바로, 사실 초창기 구성원(member)일 뿐이었다는 논란까지 있다는 사실에 이르면 그냥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2006년까지 그린피스는 홈페이지 중 역사 소개에서 조직의 모태가 된 ‘‘Don't Make A Wave Committee’의 설립자와 구성원을 함께 설명하였으나, 이후 이를 정확히 구분하여 표현하고 있으며, 설립자(co-founder) 명단에서 무어는 빠져있다.)

그는 핵산업계 로비단체인 NEI(Nuclear Energy Institute)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2006년에는 NEI가 설립한 기구인 CASEnergy(Clean and Safe Energy Coalition)의 공동 의장을 맡는 등 매우 적극적인 찬핵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그가 매번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의 활동에 대한 반성과 참회를 반복한다. 2006년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 ‘Going Nuclear' - 이 글의 인용 글은 국내에 많이 보도되었다. 여기에는 핵산업계에서 그의 사진과 함께 번역문을 배포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 이 대표적이다. 이 글의 첫문장에서 그는 ’1970년대 초 내가 그린피스 설립을 도왔을 때, 대부분의 동료들이 그랬던 것처럼 핵에너지와 핵참사는 동의어인줄 알았다‘라며 자신의 과거를 반성한다. 이후 이어지는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 그리고 핵산업계가 수십년동안 주장해 온 값싸고,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원이라는 주장이 그대로 이어진다.

 

참회와 반성, 위기, 그리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 주인공은 바뀌었지만 같은 레파토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언론을 통해, 또는 찬핵론자들의 주장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면서 실체를 찾아보기 힘든 거대한 하나의 담론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장면에서 1980년대, 탈북한 이들이 TV 카메라를 보고 ‘자유대한이 좋아서, 쌀밥이 먹고 싶어서 넘어왔다’고 외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했던 우리시대의 모습을 떠 올린다면 너무 지나친 상상일까?

 

기후변화의 위기를 이용하려는 핵산업계

우리 속담에 ‘불난김에 도둑질한다’는 말이 있다.

 

기후변화문제로 전세계가 어려움에 처해있다. 기후변화문제는 인류가 지금까지 지구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화석연료를 사용해 왔기 때문에 생긴 문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또 다른 - 지구온란화 문제에 버금가거나 경우에 따라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핵발전을 확대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일이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방법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환경적 피해를 일으키지 않는 방법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인류가 중앙집중적이고 대량생산 중심의 삶의 방식을 만들어 온 것에 대해 새로운 양식 - 분산형이며, 적정한 기술에 따르는 것이며, 생태계 부하를 최소화 할수 있는 방안을 찾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핵발전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기후변화의 대안이 될 수 없다. 핵폐기물과 운영과정에서의 위험성 뿐만 아니라, 대규모-중앙집중적인 에너지원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송전탑으로 인한 지역주민들의 어려움, 온배수 배출로 인한 해양 황폐화, 생산지와 소비지가 분리됨에 따른 에너지 불평등 야기 등 그 존재만으로도 많은 환경적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이유들 때문에 서구 각국을 비롯 전 세계가 ‘다른’ 에너지원을 찾기위해 수십년 동안 노력해 온 것이다.

 

하지만 핵산업계와 이를 옹호하는 이들의 움직임은 앞으로 더욱 극심해 질 것이다. 특히 올해 포스트 교토체제를 정하는 기후변화협약 회의를 둘러싼 핵산업계의 로비는 더욱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사실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 바라보고 세상을 바꾸기 위한 국민적 혜안(慧眼)이 아닌가한다. 인류가 만든 핵발전소는 몇십년 밖에 못 가지만, 그 발전소에서 나온 고준위핵폐기물이 1만년~100만년을 보관해야 한다. 우리가 핵발전 문제를 길게 보고 심사숙고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래프는 첨부파일을 확인하세요.>

 

 

* 핵산업계는 ‘원자력 르네상스’가 왔다고 하지만, 70-80년대의 영광이 재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

 

<출처 : Mycle Schneider, “Myths and Realities on Nuclear Power in the World",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