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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우리와다음] 온실가스 감축에 대해 정부와 환경단체의 다른 생각 - 앞서가는 세계 각국, 출발점에도 서기 싫어하는 대한민국

2009년 10월 작성.

원 문보기 : http://eco.antp.co.kr/13877


앞서가는 세계 각국,

출발점에도 서기 싫어하는 대한민국

온실가스 감축에 대해 정부와 환경단체의 다른 생각

 

이헌석 greenreds@eco-center.org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

1997년. 일본의 옛 수도이자, 우리나라의 경주처럼 조용하고 깨끗한 역사도시 교토에서 전 세계 각국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방안을 합의하고 이를 문서로 만들었다. 이후 10여 년 동안 지구온난화는 전 인류에게 새로운 화두가 되었고, 교토의정서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누구나 한번쯤 들어 보았을 단어’가 되었다.

 

교토의정서 당시 많은 환경단체들은 선진국들의 감축안(평균 5.2%)이 너무 낮은 것이라고 강력히 비난했고, 탄소거래와 청정개발체제(CDM) 등 소위 온실가스 감축의 유연성체제는 환경적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이를 새로운 시장창출에 이용하려고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과학적 근거와 역사적 책임보다는 정치적 타협의 결과물이었던 ‘교토의정서’는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각국의 최초로 지구온난화문제에 대해 의견을 모은 ‘합의’로서 더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리고 이제 교토의정서에서 정해 놓은 온실가스 1차 감축이행기간(2008년~2012년)이 끝나가고 있다. 1990년 이후 진행된 기후변화협약 논의는 1차 감축기간 이전부터 자발적인 감축방안을 유도해 왔고, 미국 등 주요 배출국의 참여가 없는 등 미흡한 점이 많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차별화된 공동의 책임‘을 이행하는 의미들을 지키고자 노력해 온 것이 사실이다. 1차 감축이행기간이 끝나감에   따라 기후변화협약회의는 올해인 2009년 2차 감축기간(2013년~2017년)까지의 감축의무 대상국, 감축량, 방식 등을 다시 논의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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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미뤄놓은 숙제 - 온실가스 감축의무국

1997년 교토 기후변화협약회의 당시 한국은 OECD에 가입한지 1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신흥선진국이었다. 산업혁명에 동참하지 못한 것은 물론, 산업화가 진행된 지도 불과 20-30년밖에 되지 않았기에 한국이 온실가스 감축의무국에서 빠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OECD에 가입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고, 무엇보다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9위, OECD 국가 중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 1위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 세계가 온실가스 감축논의를 시작한 1990년 이후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감축량은 급격히 늘어 1990년 298Mt이던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05년 594Mt으로 거의 2배 가까운 증가세를 보였다. 1차 감축이행기간 동안 감축의무국들이 모두 1990년 배출량을 기준점으로 몇 %를 줄일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는 점을 감안 할 때, 한편에선 선진국 대열에 들었다고 자부하고 있는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량은 민망하기 이를 때 없다.

 

이렇게 온실가스 발생량이 늘어나게 된 것은 1997년 교토의정서 제정 이후 우리 스스로가 온실가스 감축문제를 의제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1960~70년대 우리나라 주요 성장 동력이었던 석유화학, 제철, 금속 등 에너지 다소비형 중화학공업은 아직도 우리나라의 주요 산업이며, 이는 모두 내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수출목적의 산업이다. 이에 따라 전기소비량을 비롯 각종 에너지 소비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이는 그대로 온실가스 배출 증가로 이어졌다.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 조정이외에도 고탄소형 정책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근 전기요금 인상정책을 통해 그 격차가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전기요금에는 원가이하의 산업용요금과 원가이상의 가정용요금이 공존하는 ‘교차보조제도’가 적용되고 있고, 대중교통보다는 자동차 중심의 도로정책과 농업, 운송, 일상생활에서 높은 에너지 소비와 석유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노력은 광범위하게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8월 정부가 내놓은 온실가스 감축 시나리오는 우리정부가 그동안 얼마나 지구온난화 문제에 있어 소홀히 해 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감축시나리오는 그동안 일정 목표 없이 ‘감축에 노력하겠다’는 선언식 문구에서 한발 나아간 점은 있으나, 2005년 대비 8% 증가, 동결, 4% 감소 등 매우 낮은 수준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이미 2005년의 배출값은 1990년 대비 2배가 늘어난 상황이기에 그동안 우리나라가 배출한 온실가스 감축안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양이기 때문이다. 이에 환경단체들은 2005년 대비 25% 감축안을 환경단체 공통안으로 확정하고, 이 안의 의미를 알리고자 서울, 부산, 인천 등 대도시를 돌며 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그동안 소극적이었던 우리나라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다시 한 번 돌이켜보고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행보를 촉구하는 의미의 이런 행사는 올해 기후변화협약회의가 마무리되더라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때로는 선진국, 때로는 개발도상국 - 박쥐로 살 것을 부추기는 이들

올해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기후변화협약회의를 앞두고 세계 각국은 이미 저마다 온실가스 감축안을 내놓고 있다. EU가 1990년 대비 2020년까지 20%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소위 ‘202020’계획을 밝힌바 있고, 가까운 일본도 최근 하토야마 총리가 민주당 공약이었던 25% 감축안을 다시 확인하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한 그동안 소극적이었던 미국조차도 오바마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안과 함께 동참의사를 밝히고 있어 이제 온실가스 감축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지구 공통의 목표가 되고 있다.

 

이들이 이처럼 자신 있게 감축목표를 밝힐 수 있는 것은 그동안 착실한 준비를 해왔기 때문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기후변화협약회의를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EU 각국이 재생에너지를 비롯하여 저탄소경제의 선두에 서 있는 현실과 석유산업의 이해관계에 묶여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왔던 미국이 이를 뒤따르고 있는 현실은 이미 잘 알려진바 있다. 이는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강력한 신호를 산업계에게 주지 않는다면, 거대한 화석연료 중심의 산업은 자신의 속성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기본적인 사실에 기인한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최근 우리나라 일각에서는 ‘국익’과 ‘실익’을 근거로 온실가스 감축을 회피하고자하는 의견들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산업계를 중심으로 ‘아직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불황이 거듭되고 있는 상황에서 온실가스 감축이 새로운 장벽이 되면 곤란하다는 일부 산업계의 의견이다. 1997년 이후 10여년의 준비기간을 사실상 화석연료의 시대로 마감해버린 지금. 또 다시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는 논조는 마치 개학을 앞두고 방학숙제를 못해 허덕거리고 있는 초등학생의 모습과 흡사하다. 또한 어떤 때는 G20 정상회의도 유치하는 선진국이라고 자랑하지만, 온실가스 감축과 국제사회의 책임을 이야기할 때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임을 강조하는 박쥐의 모습과도 흡사하다.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우리 경제 규모와 대한민국의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에 걸맞춘 모습으로 나아가야 함은 물론이다. 또한 이번 제 15차 기후변화협약총회가 겉으로만 ‘국익’과 ‘실익’이 아니라, 진정한 ‘국익‘과 ’실익‘이 어떤 것인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