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원고

후쿠시마 핵사고 3년, 후쿠시마가 우리에게 준 것과 우리가 놓친 것


140407_후쿠시마3년_한국탈핵운동의방향_아이들에게핵없는세상_국회의원모임.pdf



<2014.4.8. 아이들에게핵없는세상을위한 국회의원연구모임, “탈핵을 위한 제언 집담회원고>

 

후쿠시마 핵사고 3, 후쿠시마가 우리에게 준 것과 우리가 놓친 것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2011: 핵발전과 에너지문제에 대한 인식 전환

한국 현대사를 쓰면서 1987년과 1998년을 빼 놓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19876월 민중항쟁을 통해 우리나라의 민주화는 큰 진전을 이룰 수 있었고, 1997년 외환위기와 노동자 대투쟁은 우리 사회전체를 뒤흔드는 사건이었다. 이 두 가지 사건과 양상은 다르지만 20113, 후쿠시마 핵사고와 9915 정전사태는 그간 전문가 영역에 국한되어있던 핵발전과 에너지 문제를 우리 일상생활 앞으로 가져온 일대 사건이었다.

 

선진국, 그것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겼던 일본에서 벌어진 대형참사는 그간 필요악이라고까지 불리던 핵발전이 인류와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석유 정점이나 에너지위기같은 교과서적인 말로만 접했던 에너지문제를 이제 우리 국민은 전국적 정전사태와 전력대란을 통해 위태로운 현실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이전까지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십수년동안 진행한 교육과 캠페인, 여타의 활동들을 뛰어넘는 변화였다. 특히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누출에 따른 수산물 파동은 방사능이 위험하다하는 어떠한 캠페인보다 파급력이 컸다. 눈에 보이지도 않으며, 느낄 수 없는 방사능, 그리고 원산지를 속이면서 국내로 유입되는 일본산 수산물은 말그대로 공포로 우리 국민들에게 다가왔고, 결국 전국의 수산시장이 개점휴업 상태로 들어가는 파국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3, 무엇이 달라졌나?

2011년 이후 우리사회는 이러한 일을 겪으면서 어느덧 3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핵사고를 모르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핵발전에 대한 찬반논쟁은 언제나 뜨거운 주제이지만 핵발전은 위험하다는 명제는 이제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한수원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서도 종종 들을 수 있는 말이 되었다. (다만 이 위험은 통제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이 붙을 뿐이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전 진보진영에서조차 반핵운동과격하고 대안없는 운동으로 불리곤 했으나 이제 탈핵은 우리사회의 새로운 화두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후쿠시마 핵사고라는 뼈아픈 역사의 교훈이 없었다면 결코 만들어지지 못했을 소중한 성과이다. 지금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약 8만여명의 후쿠시마 주민들, 피난과 피폭스트레스, 생활고 등으로 세상을 등진 수 많은 이들에게 한국사회는 소중한 빚을 졌다.

 

하지만 현 상황을 냉철하게 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의 인식은 바뀌었지만,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데까지 이어졌는가? 일본 바로 옆나라에 있는 대한민국의 핵발전정책은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바뀌었는가? 전체적 방향을 바꾸지 못했다면, 지난 3년간 단 한기의 핵발전소라도 멈추거나 건설이 백지화되었는가? 우리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핵발전소 : 전국민이 반대해도 없앨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1차적으로는 한국 탈핵운동의 힘이 너무나 미약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모든 것이 설명될 수 있을까?

인류 역사에서 불안과 공포, 세상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적은 많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것들은 세상을 바꿔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일정한 방향성을 갖추지 못한 불만은 기득권 세력에게 이용당하거나 몇 가지 당근앞에 무력하게 무너져버린 예들이 많다.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핵산업은 거대한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장치 산업이며,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기도 하다. 또한 수십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뿌리내리며, ‘차세대 성장동력으로까지 언급되는 산업이다. 이러한 흐름에 맞서 싸우는 것은 매우 조직적이며, 체계적인 흐름을 갖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후쿠시마 핵사고를 거치면서 소수의 활동가들과 지역주민들이 외로운 싸움을 하던 때는 이제 끝났다. 지금 탈핵운동에는 수 많은 동지들이 생겼고, 자발적인 활동들이 전국적으로 끊임없이 생기고 있다. 후쿠시마 핵사고 3주기를 맞는 우리의 현실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험하다불안하다는 같은 자기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를 향해 핵발전소를 없애라!’는 강력하고 구체적인 정책적 요구’, 그리고 정치권의 변화로 이어질 때만 가능한 일이다. 후쿠시마 핵사고를 겪은 일본이나 체르노빌 핵사고를 겪은 우크라이나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핵발전소는 전 국민이 반대해도 결코 없앨 수 없는 존재이다. 전 국민적 반대 속에 기존의 이해관계와 다른 새로운 정치지형이 만들어지고, 이 흐름이 구체적인 변화를 추동할 때만 진정한 의미의 탈핵이 가능한 것이다.

 

한국 탈핵진영도 일찍이 이를 깨닫고 2012년 대선을 즈음해서 어느 때보다 강력한 탈핵정치에 대한 요구를 밝힌 바 있다. 미약하지만 당시의 성과로 탈핵문제는 한국 대선에서 처음 이슈로 부각되었고, 당시 박근혜 후보 조차 유보재검토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상 핵발전소 추진을 은폐하기 위한 포장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데는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핵발전소 백지호로 설 곳이 없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핵산업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열심히 탈핵을 외치던 많은 이들은 뿔뿔히 흩어져 점차 세력을 잃고 있다.

 

2016~2017년 한국 탈핵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제 한국탈핵운동진영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한국 탈핵운동진영의 도전은 이것을 끝나는 것인가? 현재 23기의 운영 중인 발전소가 십수년뒤 40기 이상으로 늘어나고 10여기의 수명완료 핵발전소 재가동되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가?

 

후쿠시마 핵사고 3. 이제는 한차례 정리와 평가, 그리고 이후 계획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한바탕 큰 잔치는 끝났고, 이제 새로운 잔치를 준비할 때이다. 다양한 현안들이 뒤엉켜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현 국면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새로운 전략과 기획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그리고 그 기획의 일환으로 나는 2016~2017년 한국탈핵의 새로운 격동기를 만들어 갈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체르노빌 30주년, 후쿠시마 5주년이 겹치고, 20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있는 해 2016. 그리고 고리 1호기 2차 수명연장과 대통령 선거가 함께 있는 2017년은 한국탈핵운동진영에 2012년 총선과 대선이 큰 의미를 차지했던 것만큼 매우 중요한 해이다.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던 한국탈핵운동이 준비도 없이 2011년 후쿠시마 핵사고를 맞아, 대중교육부터 현안대응, 언론 대응을 소수의 몇몇 사람들의 헌신으로 때우던 2012년과는 다른 준비,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그 사이 탈핵운동에 함께하는 조직, 개인은 늘어났다. 이들을 계속 늘려가는 한편 기존 조직과 개인을 새롭게 네트워킹하고, 원활하게 소통하게 만드는 일은 이제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다. 또한 핵은 죽음이다라는 단편적인 구호가 아니라, 탈핵정책을 정치권과 지자체, 중앙정부가 수용가능한 정책으로 만들고 논리적 근거를 축적하는 일들의 중요성 역시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현재 탈핵운동 진영을 전체적으로 진단하고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는 것이다. 기존의 운동은 지속적이고 광범위하게 전개, 새로운 운동 영역을 끊임없이 개척해 나가는 것. 당연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이 바탕이 된다면 2016~2017년은 한국 탈핵운동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 것이 분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