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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문] 한국에서의 탈핵기본법 제정의 쟁점과 과제

에너지전환기본법 공청회
일 시 2013년 3월 11일(월) 10:30
장 소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
주 최 탈핵에너지전환 국회의원모임 /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
주 관 국회의원 한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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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311_한국에서의 탈원전기본법 제정의 쟁점과 과제_토론문_이헌석.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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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문 3

 

한국에서의 탈원전기본법 제정의 쟁점과 과제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대표)

 

 

1. 시민사회의 탈원전논의와 핵에너지 관련 법률 체계

 

그간 시민사회단체에 이야기해온 탈핵탈원전및에너지전환기본법이라는 법령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보다 엄밀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간 탈핵은 핵발전과 핵무기를 염두해 둔 것이지만, 이는 대략적인 설명일 뿐 실제 탈핵의 논의 내부에는 핵에너지 이용과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전반적인 노력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법령으로서 탈원전기본법을 만들어감에 있어 핵에너지 관련 법령이 워낙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이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 역시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핵에너지 관련 법률은 크게 핵에너지 이용을 직접 규정하고 있는 법령과 실제 핵에너지를 이용하면서 생기는 부가적인 문제를 규정하는 법령으로 나눠볼 수 있다. 전자는 원자력안전법, 원자력진흥법, 원자력손해배상법, 방사선및방사선동위원소이용진흥법, 원자력손해배상법, 생활주변방사선안전관리법, 등이 있으며, 후자는 발전소주변지역지원에관한법률, 의료법, 식품위생법 등이 있다.

이들 법령의 내용을 보면, 실제 핵발전과 관련한 것부터 동위원소, 연구용원자로, 진단용·치료용 방사선 발생장치, 식품보전을 위한 방사선조사처리업 규정, 토양 등 생활주변 방사능에 대한 규정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들 법령은 다시 법령과 시행령, 시행규칙, 담당 부처장의 고시로 세분화되어 있으며, 담당 부처도 핵발전의 운영을 담당하는 지식경제부와 R&D 및 규제를 담당하는 교육과학기술부, 원자력안전위원회 뿐만 아니라, 농림수산부(식품), 보건복지부(의료법), 고용노동부(작업현장의 방사선), 원자력안전위원회/한국방사선안전재단(생활주변방사능) 등 다양한 부처에 흩어져 있다.

 

이와 별도 핵에너지 이용과 관련해서 외국과의 협정, 원자력위원회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의 공식 결정사항을 통해 국내법에 준하는 규정들이 있다. 한미원자력협정을 비롯하여 각국과의 원자력이용에 대한 협력,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에 대한 253차 원자력위원회 결정, 한반도비핵화선언, NSC핵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4원칙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탈원전기본법안은 탈핵을 선언하는 의미를 강하게 갖고 있으나, 실제 법제화 과정에서는 다양한 법률과의 관계 문제를 빼 놓을 수 없다. 특히 핵발전소를 폐기하는 과정에서 발전소 주변지역지원금의 소멸, 중저준위 및 고준위 핵폐기물, 원자로의 폐로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며, 탈핵의 개념을 방사능 식품 및 생활주변 방사능으로부터의 안전까지를 함께 고민하고 있다면 더욱 이에 대한 고민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2. 일본의 脱原発法制定運動

 

2.1. 1988~1991년 일본의 탈원발법제정운동

 

탈원전기본법안의 사실상 모태는 일본의 탈원발법이다.

피폭국가 일본의 반핵운동은 주요한 시점이 있을 때마다 변화를 거듭해 왔다. 195431일 비키니섬 수소폭탄 실험으로 인한 제5후쿠류마루 사건과 3200만명(당시 일본 유권자의 거의 절반에 이른다.)에 이르는 핵무기 폐절 서명운동, 1974년 원자력선 무츠의 방사능 누출 사고와 무츠입항반대운동, 1979년 드리마일 핵사고로 인한 반핵운동 등 주요한 시점이 있을 때마다 일본 반핵운동은 조금씩 확대되어 왔고, 1986년 체르노빌 핵사고로 인한 일본 국민의 충격은 자연스럽게 반핵발전소 운동의 확대로 이어졌다.

 

우리나라가 후쿠시마 핵사고를 거치면서 방사능 낙진과 식품오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던 것처럼 일본은 1986년 체르노빌 핵사고를 거치면서 반핵운동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졌던 것이다. 이에 일본 반핵운동진영은 그전까지 사용하던 반원발(反原発)’이란 구호를 탈원발(脫原発)’로 바꾸면서 핵발전소 반대운동을 대중적인 운동으로 확대시키고자 노력한다. 이미 오스트리아, 스웨덴, 이탈리아 등이 핵발전소 유지여부에 대한 국민투표를 한 상황에서 일본에서도 국민투표를 고민하였으나, 일본은 국민투표에 대한 법령이 갖춰지지 못했기에 이 대안으로서 탈원발법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이를 위해 체르노빌 2주기였던 1988423~24. 도쿄 히비야공원에서 핵발전을 중지하라! 1만인 행동이 준비되었다. 해외초청강연회, 핵연료이송반대, 핵연료싸이클과 핵폐기물, 식품오염까지 다양한 주제에 걸쳐 243개 단체가 준비한 이 행사에는 애초 5천명만 오면 잘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2만명이 모이는 사상 초유의 행사가 되었다. 이 행사의 마지막 집회에서 집회실행위원회 측은 탈원발법제정운동을 공식 제안하고 같은 해 1023일 도쿄에서 열린 반원발의 날행사에서 탈원발법 제정을 위한 100만명 서명운동이 제기되고 198912월 탈원발법 네트워크가 결성되어 탈원발법제정운동이 본격화된다.

 

당시 탈원발법은 건설중, 계획중인 핵발전소의 계획을 인정하지 않고 즉시 폐기한다. 운전중 원자력발전소와 핵연료싸이클 시설은 일정 기간이 경과한 이후 순차적으로 폐기한다. 방사성폐기물은 지하, 해저에 두지 않으며, 관리가능한 상태에 두며, 발생자가 책임지고 관리한다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였다. 이후 서명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체르노빌 4주기를 맞은 19904271차분 250만명의 서명을 국회에 전달했고, 체르노빌 5주기인 1991426일에 2차분 967천명 서명을 국회에 전달하는 등 모두 3305천명의 서명을 거두는 경이로운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 많은 국민들의 서명이 국회에 전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청원제출에만 그쳤다. 관련한 법안은 만들어지지 못했고, 결국 논의도 없이 끝나버린 것이다. 훗날 당시 반핵운동의 대표 주자였던 다카기 진자부로 박사는 이일로 커다란 좌절과 우울증에 빠졌다고 할 정도로 그 역풍은 큰 것이었다.

 

2.2. 일본탈원발법 제정운동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현재

 

1988~1991년까지 이어졌던 일본 탈원발법제정운동은 일본의 다양한 단체와 운동세력이 참여한 대중운동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 당시 참여단체를 보면 시민사회단체와 핵발전소 지역주민은 물론, 사회당과 총평을 비롯하여 우리의 공무원노조에 해당하는 자치노(自治勞) 소속 공무원들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했다. 또한 1988~91년에 이르는 기간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오랜 기간 동안 기획과 조직, 집행을 진행해 온 힘 역시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교할 때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당시 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이 평가하는 것처럼 이 운동은 대중운동으로서는 성공했지만, 국회를 비롯하여 정치권을 움직이고 정책을 바꿀 수 있는 힘을 만드는 측면에서는 실패한 운동이다. 엄밀히 말하면, 핵발전이 갖고 있는 정치적 예민함과 핵산업계의 정치권 로비력 등을 고려할 때, 단지 법안을 청원하는 운동의 한계는 애초 분명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법안이 없어서 탈핵이 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탈핵 정책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안이 성안조차 되지 못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탈원전기본법안 역시 탈핵의 문제의식을 확산시키는 매개로서 활용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탈원전기본법 제정운동을 폄하하거나 도구적으로만 사고하는 것 역시 경계해야할 태도이다. 탈원전기본법안은 탈핵을 보다 구체적인 현실로서 바라보고, 고민하고 설명할 수 있는 매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반핵운동은 최근 후쿠시마 핵사고를 계기로 다시 탈원발법제정전국네트워크를 만들고 작년 8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에 따라 작년 9, 102명의 국회의원 동의를 얻어 탈원발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후 의회 해산에 따라 법안은 자동 폐기되었지만, 올해 7월 참의원선거를 앞두고 다시 탈원발법 제정운동이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조금 더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3. 탈원전기본법안에 대한 의견과 보다 포괄적인 논의

 

3.1. 탈원전기본법안에 대한 의견

 

그간 반핵운동을 해 온 입장에서 탈핵의 필요성과 의미를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탈핵은 말그대로 폭넓게 (핵무기는 물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포함한) 핵에너지에서 벗어나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좁게는 현재 전력 중 약 30%를 차지하고 있는 핵발전 비중을 결국 0%로 만드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현재 탈원전기본법은 법령이름 그대로 그 범위를 탈원전으로 국한시켜 보고 있다. 그간 탈핵논의를 법령으로 반영하는 과정에서 나온 일종의 타협이라 볼 수 있을 텐데, 하나의 법령에서 모든 내용을 담기는 힘들지만 수차례의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반도비핵화선언과 핵의 평화적이용에 대한 4원칙 정도의 선언과 발표문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핵무기에 대한 입장을 법 수준으로 높이기 위한 작업은 이후 반드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다른 맥락으로 탈원전에 대한 정의 역시 협소하게 지정된 면이 있다. 현재 탈원전법안에서 탈원전이란 가동 중이거나 가동 예정인 원자력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여 최종적으로 원자력발전을 종료시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간 한미원자력협정 논의에서 보듯 우라늄농축과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를 포함한 소위 핵연료싸이클을 완성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이미 진행 중에 있으며, 2008255차 원자력위원회를 통해 결정된 미래원자력연구개발 계획을 통해 파이로프로세싱을 비롯한 후행 핵연료 싸이클 연구개발계획을 확정짓고 그 세부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 이는 차세대 핵발전소 개발과 맞물려 안정적인 전력확보를 위한 측면이라 정부는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좁은 의미의 탈핵이라 할지라도 그 의미를 가동 중이거나 가동예정인 핵발전소로 국한 시키는 것은 현 상황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 탈원발법에서 다루고 있는 것처럼 탈원전의 의미를 핵발전을 이용하지 않고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체제를 확립하는 것으로 확대하여 현재 진행 중인 핵연료싸이클 계획에 대해서도 함께 다룰 수 있도록 여지를 만드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한편 탈원전의 대안으로 언급되고 있는 에너지전환과 관련해서 핵발전의 종료에 따른 대체에너지로서 에너지 수요증가를 억제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확대하지 않는 재생에너지의 개발·이용·보급을 확대해 나가는 것”(24)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는 큰 틀에서는 기존 시민사회의 논의를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또한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24항에서 다루고 있는 표현을 보면, 2005년 기존 대체에너지개발및이용·보급촉진법을 현재의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으로 바꾸면서 사라진 대체에너지란 표현이 살아났다. 이 부분은 최근 에너지정책의 쟁점사항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1970년대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석유 등 화석에너지를 대체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던 대체에너지(Alternative Energy)2005년에 들어 신에너지와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로 구분되었지만, 기존 대체에너지개발및이용·보급촉진법의 틀을 그대로 유지한 채 하나의 법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석탄 액화가스기술, 폐기물에너지, 연료 전지 등 재생에너지와 무관한 에너지원들이 정부통계는 물론 각종 지원 사업에서 재생에너지 취급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수년전부터 신에너지와 재생에너지를 분리하고자 하는 시도가 에너지경제연구원이나 국회를 중심으로 있었으나, 아직 완료되지 못한 상황이다.

 

또한 에너지전환의 대안을 언급하는 부분 다시 디자인 되어야 할 것이다.

에너지전환의 방법을 재생에너지로만 국한 시키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한 대안이다. 최근 시민사회진영에서 내놓은 몇 개의 탈핵·에너지전환 시나리오의 공통점은 재생에너지의 비율을 높혀감으로서 결국 탈핵을 이루는 것이지만, 핵발전이 줄어든 만큼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는 시나리오를 채택하고 있지는 않다. 재생에너지 보급·확대의 중간단계로서 천연가스를 비롯한 보다 친환경적인 화석연료원을 사용함으로서 시간을 확보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가자는 것이 그간 시민사회의 요구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에너지전환의 방법을 재생에너지로 국한시키는 것은 문제를 제대로 짚지 못하고 있는 면이 있다.

 

또한 언급된 탈원전 및 에너지전환의 추진방향과 관련해서도 보다 세부적인 개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5조에 나온 원자력발전소의 단계적 폐쇄와 관련해서는 개념을 법적용어로 통일하는 것이 혼란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현행 원자력안전법 시행령에서는 원자로시설의 설계수명기간이 만료된 이후 그 시설을 계속하여 운전하는 것계속운전으로 잡고 있으며, 그 기준을 설계수명기간으로 잡고 있다. 이는 애초 원자로운용허가 당시 심사되었던 기간을 언급하는 것이다. 하지만, 5조에는 이를 설계수명가동연한이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고 이 경우,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우리의 설계수명의 경우, 실제 가동연수와 상관없이 수명을 정하고 있으나, 독일의 경우 수차례 논쟁을 통해 실제 가동연수를 중심으로 발전소의 수명을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실제 탈핵정책이 추진될 경우 새로운 쟁점이 될 수 있는 부분으로 기존 원자력안전법 시행령에서 지정하고 있는 것처럼 설계수명기간에 맞춰 단계적 폐쇄 시점을 정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된다.

 

한편 제8조의 각종 계획의 재수립문제는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조항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탈핵정책의 수립이 확정되면 당연히 각종 계획을 재수립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의 에너지계획 수립단계에도 수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에너지계획은 2단계 논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1차적으로 에너지법(10)에 따라 지식경제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에너지위원회에서 에너지기본계획사전심의한 이후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에 따라 저탄소녹색성장위원회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5년마다 한번씩 20년 단위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노무현대통령 당시 에너지기본법국가에너지위원회가 있을 당시보다 후퇴한 법령으로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에너지위원회의 위상을 장관급의 에너지위원회로 격하시키고, 과거 국가에너지위원회와 지속가능발전위원회의 역할을 저탄소녹색성장위원회로 통폐합한 결과이다. 그간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저탄소녹색성장에 대한 정책적 반대이외에도 국가에너지위원회 부활을 주장해왔다. 이는 국가정책에서 에너지문제가 갖는 위상과 그간 저탄소녹색성장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에 기인한 것으로 단지 탈원전기본법안 제출로만 국한될 것이 아니라, 향후 국가에너지정책을 어느 부처에서 담당하는 것이 올바른가하는 문제와 맞물린다.

 

이는 또다른 측면에서 탈원전 및 에너지전환위원회(이하 탈원전위원회)’의 역할(13)와도 맞물리는 문제이다.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탈원전위원회의 설립은 자연스럽게 과거 국가에너지위원회 혹은 현재 저탄소녹색성장위원회의 역할과 충돌될 수 있다. 따라서 이후 탈핵정책뿐만 아니라 국가 에너지정책을 논의할 단위와 절차에 대한 체계적인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10조에서 다루고 있는 원자력발전 사업 종사자의 고용지원역시 세부적으로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원칙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탈핵정책 수행시 한수원을 비롯한 원자력발전과 관련한 모든 종사자들의 고용은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원자로 폐쇄를 비롯한 탈핵과정에서도 많은 인력이 투입되기 때문에 탈핵을 한다고 해서 한순간에 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는 일또한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한국수력원자력 종사자 중 원자력공학 전공자보다는 기계, 화학, 전기 등 비원자력공학 전공자의 비중이 더 높고, 발전사업의 특성상 유지 보수, 정비관련 업무는 화력발전 등 다른 업종과 중첩되는 것들이 많다. 이러한 측면에서 탈원전기본법안에서 원자력발전 관련 사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의 고용이 보장될 수 있도록 지원하여야 한다고용 보장만을 단정적으로 표현을 하는 것보다는 고용 보장과 정의로운 전환이 이뤄질 수 있도록 포괄적인 표현으로 바꾸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또한 다른 측면에서 고용문제를 원자력발전 관련 사업종사자로 국한시키기보다는 관련 R&D나 유관기관·업체를 고려하여 범위를 확대시키는 것 역시 필요할 것이다.

 

11조에서 다루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처리방안과 관련해서는 탈원전기본법안이 선언적 의미를 다루고 있으니만큼 사용후핵연료뿐만 아니라, 중저준위 핵폐기물까지를 포괄한 내용을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사용후핵연료뿐만 아니라, 중저준위 핵폐기물을 포함시키는 것은 폐로과정에서 발생하는 핵폐기물의 양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것이며, 이는 사용후핵연료뿐만 아니라, 중저준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탈원전기본법안에서 다루고 있는 기존 민주적이고 투명한 절차 에 대한 원칙이외에도 이외에도 발생자 부담원칙, 해외수출금지, 지속가능성, 미래세대에 책임전가 금지 등의 원칙을 분명히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이외 탈원전기본법안은 탈원전으로 인해 생길 현안과 관련해서 에너지 효율화(6), 에너지기본권의 보장(9), 원자력발전소 사업종사자의 고용지원(10), 사용후핵연료 처리방안(11), 탈원전 및 에너지전환을 위한 홍보(12)를 잡고 있으나, 실제 지역에서 관심이 높은 발전소 주변지역의 지역경제와 고용 문제에 대해서는 탈원전 및 에너지전환기본계획의 포함사항에는 나와 있으나 기본 원칙은 언급이 없으며, 중저준위 폐기물 문제는 아예 언급이 없다.

 

또한 이 법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발전소주변지역지원과 폐로과정의 원칙 또한 분명히 언급되어야 할 것이다. 해외의 폐로 경험에 비춰볼 때 수십년동안 핵발전소에 의존하여 진행되어 온 지역경제가 발전소 폐쇄와 함께 심각한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며, 이로 인해 많은 발전소 주변지자체들이 오히려 탈핵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핵발전소의 폐쇄 결정이후에도 원자로 해체와 복원과정까지 짧게는 십수년에서 수십년 이상의 기간이 걸림을 고려할 때 완전히 복원될 때까지 지역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하는 점은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탈원전기본법안 중 탈원전 및 에너지전환의 추진 방향중 지역주민들에 대한 원칙과 폐로 과정에서 투명성, 지속가능성 등을 고려하는 원칙을 함께 천명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3.2. 보다 포괄적인 논의를 위하여

탈원전기본법안을 논의함에 있어 기존 법안에 대한 의견이외에 포괄적으로 함께 고민해 봐야할 부분을 정리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원자력"의 부정확함

기존 법령상 원자력이란 원자핵 변화의 과정에 있어서 원자핵으로부터 방출되는 모든 종류의 에너지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원자력안전법 제21) 말그대로 원자력이란 원자력발전이 아니라 Nuclear Energy를 의미한다. 하지만 실제 용어 사용에 있어서 원자력은 뒤에 발전(혹은 발전소)’를 생략한 형태로 많이 사용된다. 대표적으로 최근 경북도가 중심이 되어 출범한 핵발전소 안전문제 협의회의 명칭이 원자력안전협의회이라거나, 핵발전소 규제를 담당하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부서명이 가동원자력규제단인 것처럼 정부의 기관에서도 원자력은 단순한 에너지 이름이 아니라 발전원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처음 핵에너지 문제가 국내에 도입될 당시에는 일본 원자력법 등에 근거해서 원자력이란 말이 사용되었던 것이 1980년대를 반핵운동의 태동기를 거치면서 핵발전과 원자력발전의 경쟁관계가 되면서 이제는 원자력=온화하거나 찬성을 의미한 단어’, ‘핵은 과격하거나 반대를 의미하는 단어라는 등식이 자리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앞서 현행 원자력안전법의 정의뿐만 아니라, Nuclear Energy 라는 용어에서도 드러나듯이 에너지의 근간이 핵(Nuclear)에서 만들어지고 국제적으로도 이 용어가 더 통용되고 있으니 만큼 법률적 용어 역시 개정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2) 국가에너지정책은 어디서 논의해야 하는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재 우리나라의 에너지정책은 저탄소녹색성장위원회와 국무회의를 통해 심의·의결되도록 되어 있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드러섬에 따라 저탄소녹색성장위원회의 장래가 불투명한 가운데, 다시 국가에너지정책을 결정하는 단위에 대한 논의는 활성화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 당시 에너지기본법과 국가에너지위원회의 설치는 그간 정부관료 중심의 에너지정책수립에서 획기적인 변화였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에서는 1년에 몇차례 회의로만 구성되는 국가에너지위원회가 아니라, 상설사무국을 두고 에너지정책을 실질적으로 총괄할 수 있는 기구로서 국가에너지위원회가 강화되어야함을 주장했지만, 이는 받아드려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기본법은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고 25명 이내로 구성된 국가에너지위원회에 5명 이상을 에너지관련 시민단체에서 추천한 자로 둘 수 있도록 해서 시민사회단체의 참여를 보장하고, 원전적정비중 TF,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TF 등 소위 활동을 통해 핵심 쟁점을 다루는 등 적지 않은 성과를 남겼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국가에너지위원회는 지식경제부 산하로 격하되었고, 사실상 유명무실화되었다.

 

향후 국가에너지정책 논의에서 과거 국가에너지위원회와 같은 민-관 거버넌스 기구의 필요성은 매우 절실하다. 이는 전력뿐만 아니라, 석유, 석탄 등 에너지 전반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고 에너지 공급, 수요관리 뿐만 아니라 온실가스 감축 문제까지를 포괄적으로 다룰 수 있는 통합적인 기구로서 작용해야 할 것이다. 또한 단지 지식경제부의에서 만든 안건을 심의하는 기구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사무국 구성을 통해 종합적인 조정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것 역시 빼 놓을 수 없는 기능일 것이다.

 

이에 나는 탈핵정책 역시 국가에너지위원회를 통해 심의·확정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탈원전과 에너지전환의 과제 역시 매우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이 없지만, 결국 에너지정책의 일환이며, 에너지전환이라는 것 역시 전력정책의 에너지 믹스를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함으로 국가에너지위원회의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 에너지법과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등을 조정하는 가운데 보다 큰 범위에서 국가에너지위원회 부활과 분과위원회로서 탈원전 및 에너지전환위원회를 구성하여 우리나라의 탈핵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어떨까한다.

 

3) 국회의 역할과 과제

그간 에너지정책 수립에 있어 국회의 역할은 사실상 전무했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나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과정에서 국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자료요구와 상임위 현안질의 정도가 고작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탈원전기본법안에서 탈원전위원회 위원 중 5명을 국회가 선출하고(143) 시행계획을 국회에 보고는 조항을 첨가한 것(26)은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탈원전 및 에너지기본계획은 국회에 단지 보고되는 정도를 넘어 국회에서 일상적인 감시와 논의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방안도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이를 위해 탈원전 및 에너지기본계획의 국회 심의, 국회법 개정을 통한 탈원전위원회의 소속 상임위 배정 등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보았으면 한다.

 

4. 탈원전기본법 제정을 위한 의견

 

4.1. 탈원전에 대한 정책적 합의 필요

국회에서 법안을 만드는 일은 쉽다. 그러나 이것을 통과시키기는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지난 18대 국회만 하더라도 4년동안 접수된 법안만 14,762개에 이른다. 그러나 이중 가결된 안건은 2,931(19.9%)밖에 되지 않는다. 특히 탈원전기본법안처럼 쟁점이 되거나 제정하는 법은 통과될 확률이 더욱 낮다.

이러한 가운데 탈원전기본법안은 국회내부에서의 활동보다 국회 외부에서의 활동이 더 중요할 것이다. 다시 말해 탈핵정책을 정부의 정책으로 확정짓는 활동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법안의 제정은 요원한 문제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1980년대 많은 탈원발법에 많은 지지자를 얻었지만 국회를 설득하지 못했다면, 이제 우리에게는 탈원전기본법안을 지지하는 많은 지지자들을 모아야 할 것이다. 후쿠시마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핵발전의 경제성과 필요성, 우리나라의 불가피성 등을 언급하면서 핵발전 지속론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탈원전기본법안은 아직도 이상적이며 과격한 하나의 주장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안의 완성도와 국회에서의 치밀한 작업도 중요하겠지만, 당장 올해 상반기 중에 논의가 시작될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대한 논의를 보다 광범위하게 만들어가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대한 논의와 탈원전기본법안 논의는 마치 수레의 두바퀴와 같은 것이다. 수레의 두바퀴가 하나씩 있으면 제 기능을 못하는 것처럼 2개가 서로의 역할을 함께 할 때만 의미 있는 기능을 하게 될 것이다.

 

4.2. 폐로에 대한 세부 법률검토 필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핵에너지관련 법령은 다양한 법령들이 상호 관계를 맺고 얽혀 있으며, 이를 따로 떨어뜨려놓고 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특히 탈원전기본법안을 논의함에 있어 원자로폐로에 대해 충분한 준비를 갖춰놓지 못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현재 국회에는 김제남의원(2012.11), 홍의락의원(2012.11.), 민병주의원(2013.2) 등이 대표발의한 원자력안전법개정안이 상정되어 있으나, 국회는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충분한 논의가 되지 못하고 있다. 과연 원자로 폐로는 어떤 절차를 밟아 진행되어야 하는가? 지역주민과 시민사회진영의 참여는 보장되어 있는가? 충분한 재정은 확보되어 있는가? 폐로 이후의 복원에 이르는 절차와 비용은 누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등 다양한 주제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탈원전기본법안에 대한 논의만큼 원자로 폐로를 위한 구체적인 논의와 법률적 검토가 함께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