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원고

[원고] 짧지만, 많은 여운을 남긴 일본의 풍경

<청년환경센터 소식지 200411-12월호 원고>

 

짧지만, 많은 여운을 남긴 일본의 풍경

 

 

이헌석(청년환경센터 대표)

0.

"잠시 일본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핵폐기장 문제와 천성산 살리기 운동이 뒤엉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도 모를 정도였던 때가 있었다. 한참 바쁘던 7월과 8월은 지났지만, 아직 많은 일들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고 있던 11월 하순.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런 짧은 인사만을 남기고 일본으로 훌쩍 떠났다.

원래 이번 일본 방문은 약 1~2개월전부터 준비되던 것이기는 했으나, 올해의 일들이 모두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출발했던 것이라, 많은 이들 - 심지어 센터의 상근자들까지도 -에게 매우 낯선 외출(!)이었다. 하지만 만약 올해의 분주함이 없었다면, 일본을 방문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무언가 막혀있는, 그리고 답답한 운동의 일상에서 새로운 청량제가 필요했다면 정확한 표현일까? 하여튼 그 해답을 찾기 위해 현해탄을 건너게 되었다.

 

"협상 중심의 운동의 한계"

"대중운동으로 발전 못하는 운동의 한계와 협소함"

 

올해의 분주함을 겪으면서 많이 고민하게된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대정부투쟁을 중심으로 나아가던 많은 운동들이 DJ와 노무현정권에 들어서면서 "협상과 조정"의 기능이 강화되었다. 센터의 경우, 정부와의 직접적인 "협상-조정"을 진행하지는 않지만, 전반적인 환경운동의 흐름이 이렇게 되다보니, 올해의 경우 격랑에 흔들리는 배처럼 자기의 무게 중심으로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일들이 생기곤 했다.

사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환경운동이 대중운동이라기 보다는 활동가 중심의 운동이니, 센터만의 문제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기존 환경운동을 극복하고자하는 큰 포부를 갖고 있는 우리로서도 같은 문제에 부딪히고 있다는 것은 무언가 ""을 만났다는 증거이기에 고민들이 많았다.

 

사실 일본 방문은 처음이 아니다. 97년 교또기후변화협약, 2000년 반핵아시아 포럼, 2001년 다카기 진자부로 박사 추도식 등 3번이나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었으나, 그때마다 주요 관심사는 "반핵-에너지"에 국한되었다. 그러나 이번 방문의 관심사는 철저하게 "일본의 운동", 그 중에서도 "아나키즘" 운동이었다.(이후 시간을 내어 반핵정보자료실 등 반핵관련 단체도 방문하기는 했다.) 가까운 일본의 아나키즘 운동의 모습들을 살펴보면서 "대중운동"으로서 발전해 나가는 그들의 고민과 모습들을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1.

전직군인과 함께 한 반전 축제




<행사를 마치고 도쿄 하라주꾸 거리를 행진하는 모습>

 

 

일본에 도착한 다음 날, 나와 함께 참석한 일행들은 “The Anti-war Resistance Matsuri <Festa>"라는 행사에 참석했다. Matsuri 란 일본어로 축제()라는 뜻이고 Festa 란 영어의 festival을 일본식으로 줄여 부르는 것이니, “반전-저항자 축제정도로 번역하면 될 것이다. 150여명의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이 참석한 행사지만, 전직자위대 군인, 반전활동가, 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이라크 참전문제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와 달리 일본의 군인은 직업군인이라는 점에서 전직 자위대 출신 군인이 직접 반전-파병반대 문제를 갖고 토론을 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조금은 낯선, 그러나 개인의 장기를 잘 나타내는 - Sound Demo

 


<반핵전문출판사 단포포사의 참가자. 60대 참가자인 그는 행진하는 동안 지진으로 인한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알리는 신문스크랩에 손으로 쓴 자기 단체 유인물을 뿌리며 행진했다.>

 

 

우리도 그렇지만, 집회의 백미는 행진이다. 특히 일본은 최근 집회에 대한 법령이 강화되면서 폭력진압 문제 등이 논란이 되고 있던 터라 출발 전부터 주의하라는 안내를 주최측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들었다. 행사 몇시간 전부터 행사장 주변을 서성이는 사복경찰과 교통순경들은 우리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을 굳이 찾으라면, 역시 병역의무에 따라 움직이는 전경이 없다는 점 정도일까? 행진을 한 하라주꾸 시내는 일본에서도 가장 화려한 10대의 거리이다. (시골의 학생들이 동경으로 수학여행을 오면 가장 먼저 가는 곳이 하라주꾸라고 한다.) 그 속에서 외치는 구호 소리와 풍경 역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Sound Demo” 라고 해서 온갖 소리나는 것들(악기든 아니든 별로 상관 없다.)을 모두 들고 나와 주위의 관심을 끌면서 행진을 했다. 발전기를 수레에 싣고 전자기타를 치기도 하고, 북과 패트병이 동원되는가하면, 조용한 피리소리까지 그야말로 소리의 혼동이었다. 준비의 주최측은 있으되,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서로의 목소리를 내는 그야 말로 난장(亂場)”의 모습 그대로 였다.

 

2.

다기다양한 운동의 형태,

그리고 그것이 어울리는 하나의 행사

 

집회의 형태는 우리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그 진행은 사뭇 달랐다. 8월부터 준비한 이번 행사는 한국의 MBCYTN이 취재할 정도로 비교적 규모있는 행사였다. 6개 반전단체와 10여명의 실행위원이 함께 준비 하기는 했지만, 아나키즘 조직의 특성상 동원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참석자는 자발적인 참석자들이었다.

이들 자발적 참석자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이 운동가이기도 하다. 행사장 주변에 만들어진 10여개의 안내부스에서는 모두 자기 단체의 홍보물과 행사 안내 유인물을 나눠주기에 분주했다. 집회와 문화행사, 영화상영, 후원 촉구 유인물, 일반적인 선전에 이르기까지 마치 반전백화점을 보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자신이 참여하는 행사에서 선전하고, 그 힘을 모아 또 다시 행사를 진행하는 순환. 얼마되지 않는 단체들이 행사를 진행하기에 급급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우리의 모습과는 분명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아직은 정확히 이해되지 않지만, 살펴볼 가치가 있는 일본의 운동

 

속된말로 미국의 10년 전 모습은 일본이고, 일본의 10년전 모습이 우리나라라고 한다. 어쩌면 10년 장기불황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이제 끝이 보인다는 일본의 모습은 아직도 장기불황에서 못 헤어나고 있는 우리의 미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전공투의 화려한 역사를 뒤로 한 채, 아나키즘에 빠져있는 일본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배울 교훈은 무엇인가? 과거의 운동을 뛰어넘는 새로운 운동을 개척해야 할 지금. 우리 운동의 나갈 방향은 무엇인가? 누구나 손쉽게 운동에 참여하게 하는 그 근본 힘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직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처음 가졌던 협상과 타협을 이끌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대중들과 함께 발전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확신은 더욱 견고해졌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파편화되어질 지라도 얼마든지 활성화된 운동이 가능하다는 좋은 예를 보았기 때문이다. 아직은 일본의 운동에 대해 100%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이 공부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안고 올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